고등학교 시절 단짝친구가 있었다. 계룡산 기슭에서 태어나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로 나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성실하게 근무를 했다. 그렇게 삼십년을 넘게 근무하다보니 직급도 높아지고 업무량도 늘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여러 형제들 틈에서 자란데다가 아버지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다보니 어떻게든 자수성가하여 자녀를 키우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었다. 워낙 말수가 적어서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 친구는 속이 상할 때마다 담배를 피우며 자신을 달래곤 했다.

불과 육 개월 전 집 근처에서 운동을 마친 후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와서 친구들의 권유로 병원엘 갔는데 우연찮게도 폐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더 큰 병원으로 가서 확인 한 결과 폐암말기 진단을 받았다.

오직 직장과 집을 오가며 정말 성실하게 보낸 삼십여년의 세월이었다. 직장의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몰두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몸에 어떤 병이 생겼는지도 모른 체 여태껏 살아온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친구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강한 의지를 갖고 병을 이겨내려고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뇌경색이 와서 말을 못하더니 또 며칠 지나지 않아서 뇌출혈이 오고 그리고는 설을 보내고는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친구의 마지막 하는 모습을 배웅하러 그를 싣고 떠나는 영구차를 따라서 갔다. 그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납골당에 안치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울부짖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인생을 마감할 때가 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그러고 보면 죽음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워 할 것도 아니고 두려워 할 것도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불현듯 병을 얻어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친구를 떠나보내는 화장터에 가보니 이승을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이 줄지어 서 있다. 이승에서의 삶이 그리도 괴롭고 힘들었든지 화장터엔 한 사람이 떠나면 쉴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가는 이들의 나이를 보면 천차만별이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로부터 어린아이도 있다. 또 이승을 떠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병으로 떠나는 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떠나는 이, 불의 사고로 떠나는 이.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인 화장터엔 수많은 사연과 슬픔이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즐겁게 살면서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을 일이다. 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단짝이었던 친구를 떠나보내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좀 더 가까이 지내며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해도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잠시 머무는 이 세상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곧바로 여름이 오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이웃들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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