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던 해,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담임을 맡았다. 그 때 우리 반에는 유난히 덩치가 큰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은 하는 짓이 남학생들과 조금도 다르질 않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남녀 공학의 학교를 다녀 본 경험이 없는 나는 여학생들은 한결같이 다소곳하고 얌전한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그들을 담임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치마를 입은 채 교실에서 말타기를 하고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도시락을 먹곤하여 반찬냄새가 늘 교실 안에 진동했다. 체육이 끝난 시간인 줄도 모르고 무심코 교실 문을 열면 속옷 차림으로 책상 위에서 뛰어 다니는 아이들로 난장판이었다. 그때 수영이는 우리 반이었다. 몸이 유난히 뚱뚱한 그 아이는 내가 특별활동 시간에 맡은 육상반엘 들어왔다. 육상반은 운동장을 뛰는 것이 전부인데 살이 많이 찌고 몸이 약한 그 아이는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따라서 육상반을 택한 것이다. 뒤뚱거리며 운동장을 돌면서도 그는 힘들어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수영이는 졸업을 하던 그 해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수영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하는데 내가 꼭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결혼하는 날을 기다렸다. 마치 내가 결혼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결혼식 날 나는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넥타이를 이 것 저 것 바꾸어 메 보기도 하고 거울 속의 나를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했다. 집 앞에서 수원행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서는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예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장 앞에 도착하니 화사한 옷차림을 한 아가씨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혜자 순화 선희 옥분이.......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말타기를 하고 속옷 차림으로 책상 위를 뛰어 다니던 아이들이 어느새 성숙한 숙녀로 변해 있었다. 그들 중에 한 아이가 수영이에게 내가 왔다는 것을 알리겠다며 뛰어가고 나도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수영이에게 갔다. 내가 수영이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화장을 하다 말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다며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예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을 하는데 아이들이 선생님도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잡아끌었다. 신부 친구들 틈에 서서 사진을 찍고는 피로연 장소로 향했다. 신랑은 나이가 많은 농촌 총각이었다. 수영이와는 나이 차이가 많았다. 나보다도 연상인 듯 하였다. 나는 아이들 틈에 끼어 음식을 먹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깔깔대는 수다스런 아이들의 말소리로 피로연 장소는 시끌벅적 했다. 학교 다닐 때 아무개가 선생님을 짝사랑했는데 그것을 알고 있었냐는 둥 면담을 할 때 다른 아이보다 일찍 끝내서 선생님을 미워했었다는 둥 이십 여명의 수다쟁이들이 모두 한마디씩 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후 수영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만 농촌총각과 결혼을 했으니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 할 뿐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수영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친구들을 통해 겨우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전화를 해서는 말을 못 잇는다. 대부도에서 횟집을 한다고, 아이는 다섯인데 몇 해 전에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먼 하늘 구름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처럼, 지나고 보면 덧없이 흐르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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