首長인터뷰 김승력 사무국장

首長인터뷰 김승력 사무국장

“고려인의 타향살이 서러움 보듬고자 시작한 야학입니다”

 

 

국내 최대 고려인 밀집 지역이 된 선부2동 땟골에 가면 고려인의 다양한 고충을 해결하고 있는 김승력(46. 사진) 사무국장을 만날 수 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그 순간도 김 국장은 매일매일 밀려드는 고려인들의 각종 어려움 해결에 바빴다. 마른 체형에 안경을 착용한 김 국장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했다. 선부2동에 마련된 고려인의 야간 한글학교 ‘너머’는 2011년 10월, 김 국장이 첫 시동을 걸었다.

“땟골 지역에 2천여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포에서 안산을 방문했습니다. 외국여행이라도 가보면 언어의 장벽이 얼마나 심한지 체험해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고려인들은 언어 장벽과 함께 같은 동포로부터 받는 심한 차별과 괄시를 받는 것이 더욱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하소연 할 곳이라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6평짜리 반지하 방을 덜컥 계약을 한 것이 ‘너머’의 첫 시작입니다.”

김승력 사무국장과 고려인의 만남은 ‘운명’과도 같았다.

10여년 전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연해주로 떠난 김 국장은 러시아 사범대학에서 한국어과 강사로 일을 하다가 운명처럼 고려인 동포 사회와 맞닥뜨렸다.

그곳에는 대책없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후 군인들이 철수해 전기와 수도가 끊어진 6개 군 막사에 사는 고려인들이 꽤 많았다. 우연한 기회에 고려인의 실상을 지켜보며 ‘민족을 떠나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

김 국장은 인터뷰를 통해 “연해주의 혹독한 추위는 넘기도록 해야 겠다 생각해 시작한 일이 지금은 제 평생의 숙제가 됐다”고 담담히 밝혔다.

6개 정착촌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김 국장은 고려인 정착촌도 만들고, 단체도 만들고, 교육센터도 만들며 13년 동안 러시아에서 활동하다 지난 2010년 가을, 한국에 돌아왔다.

러시아에서 할 만큼 했다싶어 다른 일을 찾던 김 국장은 연해주에서 온 옛 고려인 친구의 통역을 도와주다가 안산시 단원구 선부2동 땟골을 방문하게 됐고 거기서 다시 국내체류 고려인 동포들의 현실과 마주치게 됐다.

“고려인 동포 분들이 국내에서 어렵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막상 땟골에 와 보니 들여다볼수록 화가 나고, 대책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고려인들은 대부분이 강제이주와 재이주 등 고난의 역사 속에서 우리말을 잊어 버렸습니다. 말을 몰라 한국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들의 생활 패턴에 맞추어 활동하다 보니 야학을 하게 되었고 야학생들이 갖고 오는 임금체불과 각종 생활문제, 의료문제, 주택, 일자리 문제까지 별별 상담 다하다보니 별별상담소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은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는 별 같은 공간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에서 별별 상담소라 부르기도 했다.

 

 

▲ ‘너머’라는 단체 이름의 뜻과 함께 단체를 소개한다면.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단체 이름도 없었다. 고려인들이 편하게 모이는 방이니까 고려인 사랑방이라고도 부르고, 밤에 공부해서 그냥 야학이라고도 부르고 그랬다. 어느날 선생님 중 한 분이 같이 모여 활동들 하는데 그래도 이름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동포들이 국경도 넘어왔고, 한국사회 차별도 넘어야하고, 희망도 넘어야하니 ‘너머’라 부르면 어떻겠냐 제안했는데 저희 활동과 의미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그날 이 후 너머로 부르게 됐다. 정식명칭은 고려인동포지원단체 ‘너머’다.

2012년 11월부터는 국내에 체류하는 고려인 동포들의 작은 기댈 언덕이라도 되어주자 뜻을 모은 시민활동가 중심으로 한글 야학과 ‘별별 상담소’라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월세로 얻은 작은 공간들이지만 시민들의 작은 힘들을 모아 만들어가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 ‘고려인’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고려인 동포들에 대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잘 모르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와 교류가 적었다는 반증이다. ‘중국 사람이냐? 심지어 고려시대 사람이냐?’ 묻는 사람까지 있다.

고려인은 구소련지역에 살던 우리 한민족 동포들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말기 폭정과 기근을 피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들이다. 연해주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이자 병참기지화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고,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중앙아시아 아랍지역에 버려져 갖은 고난을 겪어야 했던 사연 많은 분들이다. 구소련 와해 후에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며 이런저런 문제로 살기가 힘들어져 다시 유라시아 전역을 떠돌아야하는 우리 한민족의 아픈 과거다.”

 

 

▲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가 발족됐는데 어떤 사업을 진행중인가.

“내년이 고려인 이주 150주년 되는 해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근대 한민족 이민사의 첫 장을 열며 두만강 너머 러시아 땅 연해주로 건너가 고토에 다시 터전을 잡은 지 1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시민사회계, 학계, 정치계 등 관련 분야에서 노력해 오시던 분들이 힘을 모아 함께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1월 30일 준비위 발족식을 가졌다. 일회성 행사보다는 150주년을 계기로 고려인 동포들의 숙원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발판을 마련해보자는 기조를 세우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자유왕래를 보장하는 방안에 대한 간담회와 공청회, 3만여명에 달하는 국내체류 고려인 동포들의 안정적 체류와 정착을 지원하는 고려인 종합지원센터 마련, 국내외 고려인 동포들이 참여하는 기념식 행사, 각종 학술 심포지엄 등이 준비되고 있다.”

 

 

▲ 고려인에게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늦었지만 재외 동포사 최대의 수난을 겪고 아직도 유랑하고 있는 고려인 동포들에게 모국인 한국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한다. 적극적 수용정책을 통해 향후 발생할 산업노동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모국이라는 역사적 책임의식 인도주의 문제로 부터도 자유로워 질 수 있다. 동포들의 자유 왕래가 법률적 문제와 외교, 노동 문제 등 여러 가지 저항이 크다고 걱정하는 법무부, 노동부, 외통부 관리들이 있는데 이들이 정부정책을 주도하는 현실을 감안, 급격한 자유왕래가 어렵다면 단계적 자유왕래 방안이라도 나와야 한다. 가장 어려움에 처한 동포사회부터 현실적 자유왕래를 보장하며 확대해 나가며 시장과 사회 문화적 충돌을 완화하고 이를 토대로 재외동포 전반으로 확대해나가면 될 텐데 정부에서 왜 신경을 안쓰는지 안타깝다.”

▲ 고려인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사는 곳이 안산이라는데 안산시에 제안할 것이 있다면.

“독일의 경우에는 역사적 책임의식이라는 인본주의적 사회정책에 기반 한 동포수용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독일 기본법 제 116조에 의거 귀환을 희망하는 독일계 동포들에 대해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귀환한 독일계 동포의 사회통합과 적응을 위해 국가 차원의 각종 지원방안을 마련, 통일 독일민족의 주요 일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귀환한 동포들이 6개월간 무료로 독일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어학과정을 1,800여 지역에서 4만여 개나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까지는 힘들더라도 동포들이 많이 와 살고 있는 몇 몇 지역특히 안산 땟골같은 곳에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효자 중심의 고려인 동포 지원시설들이 필요하다. 마음을 내 활동하겠다는 시민활동가들이 있으니 안산시에서는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면 좋은 민관협력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장 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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