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순 / 안산우리사랑클리닉 원장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환자 A씨는 결혼 이후 자기 자신을 죽이고 늘 남편에게 맞추며 살아왔다.

어디에 가고 싶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늘 남편의 의견과 스케쥴에 맞추어 움직였다.

따질 일이 있어도 남편의 성격이 급하여 ‘나만 가만있으면 되겠지’ 하고 늘 참으며 순간순간을 모면하였고 좋게 좋게 마무리 하였다.

이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늘 아이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생활하였으며 나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챙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지 없는 평화로운 가정이고 험 잡을 곳이 없다.

그렇게 참아주고 기다려 주었건만 남편이나 아이들은 A씨를 알아주기는 커녕 요구 사항은 점점 늘어나기만 하였다.

“나는 누구인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밤낮으로 고군분투하지만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제2의 사추기가 온 것이다.

A씨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해 보니 아무 것도 해 놓은 것도 없고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젊음도 가고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움추려 들며 의기소침해지고 급기야 점점 우울해갔다.

A씨는 그동안 참아왔던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더 이상 쌓아둘 공간이 없어져 자신도 모르게 불뚝 불뚝 화가 튀어 나왔던 것이다.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아이들에게도 아주 사소한 일에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삶에 대한 회의감을 떨쳐 버릴 수 없어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 보기도 하였다. 우울할 때는 아무 것도 감지하지 못하던 남편이 손목을 긋자 놀라서 A씨를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우울증에 대해 가족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함을 설명 들은 남편은 ‘어떤 노력이든지 가르쳐 주시면 하겠다’며 다급해하였다.

부인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면 부인에게 무엇을 도와야 할지 알게 될 것임을 설명하였다.

A씨는 치료를 하면서 밝아졌고 자신의 외모도 가꾸며 옷도 바꿔 가며 입는다.

‘오늘은 꽃이 하도 좋아 아이들을 배제하고 남편과만 식사하고 데이트를 즐기겠다’며 예쁘게 차려 입고 외래를 방문하였다.

“이제는 맞추지만 않고 남편과 대화를 나눌 생각이예요”

남편도 예전과는 달리 A씨와의 대화를 시작하였고 가능한 A씨의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남편이 출근한 시간 산책하며 꽃도 감상하고 잔디밭에 자그마하게 핀 꽃도 발견하고 책방에도 가서 신간이 무엇인지도 보고 좋은 영화가 있으면 친구들이나 남편과 함께 보고 여가 시간을 잘 활용할 것이라 다짐했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단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내가 건강해야 내 주변의 사람들도 건강할 수 있음을 A씨는 자각한 것이다.

주소: 고잔동 729-9 윈윈프라자 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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