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논설주간

봄은 왔는데

어느새 우리 곁에 봄이 왔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개나리가 활짝 폈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불쑥 우리들 곁에 왔다.

벌써 제주도에서는 벚꽃 축제가 끝나고, 봄의 전령은 남해안으로부터 봄소식을 전해 와 이제 진달래가 피고, 목련과 철쭉이 피고, 아카시아 꽃이 향긋한 향기를 내뿜을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대자연의 섭리다. 그 거칠고 멋없는 가지에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운 향기를 지니고 있는 꽃이 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산과 들에 나가 송홧가루를 털어먹고 삘기와 찔레와 아카시아 꽃을 따먹곤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삘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찔레의 맛과 아카시아 꽃의 그 달콤한 맛을 모를 것이다.

피자를 좋아하고, 방안에 앉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아이들은 산과 들에 나가 개울에서 멱을 감고 꼴을 베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맑은 개울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피라미와 메기를 잡고 어쩌다 운이 좋아 뱀장어를 잡았을 때의 그 감격을 지금의 아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산기슭을 뛰어 다니며 노는 것 대신에 오락실에서 오락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큰 덩치에 비해 갈수록 몸은 허약해지고 마음은 삭막해지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문명이 발달하여 삶이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질수록 어린 시절의 이러한 추억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이며 과일이 풍성한데도 진물이 흐르는 개 복숭아와 머루와 개암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 세대가 지나고 지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땐 이러한 추억들이 어쩌면 전설처럼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들조차도 아카시아 꽃의 달콤한 맛과 삘기와 찔레의 그 맛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 맛을 잃어 갈수록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거칠어지고 공허해짐을 느낀다.

허덕이며 살다보니 언제 꽃이 피고 지는지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요즈음 우리네 삶이다.

오월에 피는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조차도 맡아보지 못하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도 삭막하고 각박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논두렁을 뛰어 다니며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삘기를 뽑고 찔레를 꺾어 먹으며 아카시아 꽃을 따 먹던 그 시절. 가난했지만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오월이 오면 오월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고, 꽃이 피면 꽃의 향기를 맡으며 살았던 그때 그 시절. 비록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부족하여 온통 기운자국 투성이의 옷을 입고, 커다란 눈깔사탕 하나에 감격하던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왠지 그때가 그리워진다.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왔다. 하지만 우리네 생활은 아직도 봄소식이 없다.

새 대통령이 뽑히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었지만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경제는 여전히 암운을 드리워 희망을 보이지 않고, 대선공약으로 시행하는 정책들은 시행되기도 전에 부작용이 따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희망을 상실한 국민들은 풍랑으로 좌초된 배안에 갇혀서 어디로 떠다닐지 모르는 형국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봄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듯이 새로운 정부가 우리네 인생에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설령 희망을 주진 못한다하더라도 불안감만이라도 갖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근데 왠지 불안하다. 분명 봄은 왔는데 여전히 마음은 찬바람이 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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