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소 논설위원

가장 낮은 곳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며, 머리보다는 다리가 되고자 했던 마음가짐으로 살았던 이가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입니다. 그의 호인 백은 소와 돼지를 잡는 백정, 범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백범은 늘 말하기를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한 사회이며, 아름다운 삶의 원천은 힘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화의 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12대 400년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던 경주 최부잣집은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부터 과감한 나눔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가훈인 육훈에 보면,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을 하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의 전통이 우리에게는 있었던 겁니다. 기부는 아무나, 우연히 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제가 아는 한 분도 제 3세계 어린이 결연 사업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아동의 노동이 착취당하고 교육에서 제외되고 배고픔이 일상이 된 그들에게 나누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빚을 갚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남과 함께 기쁨을 함께 하고, 슬픔도 나누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안산에도 수많은 사회복지시설들이 있습니다. 학교나 집 앞에는 우리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는 지역아동센터가 62개나 있습니다. 작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고 공부를 가르치고 저녁을 먹이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나치면 보이지 않지만 관심을 가지면 분명 크게 보일 것입니다. 2004년 아동복지법에 의해 복지시설이 되기까지 달동네 공부방으로 더 유명했던 곳이 지역아동센터입니다. 저녁 늦게까지 맞벌이 가정 아이들을 돌봐주고 이들에게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대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을 동생처럼 가르칩니다. 이런 지역아동센터가 있기에 우리 아이들이 마음의 그늘 없이 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재산가들이 간혹 자기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언뜻 보면 상당히 많은 재산을 어떻게 그리 쉽게 내놓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어차피 낼 세금을 착한 부자라는 명성을 통해 기부를 한다고 비아냥거립니다. 미국은 2011년부터 100만 달러가 넘은 액수에 대해선 55퍼센트의 상속세율을 적용합니다. 그러니 상속세로 낼 것을 아예 기부해 버린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상속을 하지 않고 기부를 하면 기부한 금액에 대해서는 세금이 공제되니 말이 많은 것이지요.

복권기금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둘 참가해 복권을 사면 몇 사람에게 목돈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돌아가야 하는데 엄한데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지요.

균형 있는 분배가 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 사회는 이론처럼 쉽지 않습니다. 언제나 20% 정도의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은 온 세계가 머리를 써도 해결되지 않나 봅니다. 이런 부의 불균형을 위해 보편적 복지를 한다는 것도 무리입니다. 잘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무료로 복지 혜택을 주다보면 돈이 어디에서 막 생겨나지 않는 한 충당한 길이 없습니다. 결국 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세금 혜택을 고려한 기부가 아닌, 명성을 얻기 위한 기부가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기부가 필요합니다. 요즘의 길거리 기부 혹은 소액을 기부하는 시민들의 마음이야말로 착한 기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말이 가기 전에 이웃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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