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산시는 기존의 도시가 주민들의 생활환경에 맞게 자연스럽게 커지며 발전한 도시가 아니고 도시설계자들에 의해 설계된 도시에 주민들이 적응해야 하는 최초의 계획도시였다.
자연녹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당초의 원주민들 이주시킨 상태에서 아주 새롭게 태어난 우리나라 근대 최초의 계획도시인 것이다.
인구 20만 공단배후 전원도시로 설계되었다가 1985년 인구20만 도시에서 인구 30만의 복합도시로 도시설계 계획이 수정되었고 1990년에 이미 인구가 40만명이 되면서 당초의 계획을 넘어버렸다.
더구나 그 해에 신도시 2단계 계획이 발표되어 고잔신도시에 13만명의 인구가 더 늘게 되었고 1994년 대부도와 반월동이 안산시로 편입되고 1995년에 안산동이 안산시로 편입되면서 인구 20만명의 공단배후도시로 자급자족하는 꿈의 전원도시는 인구 70만의 거대도시로 바뀌게 되었다.
6.25 한국전쟁 전까지 바다이고 갯벌이었던 지금의 고잔신도시는 한국전쟁 후 별망과 사리를 잇는 방조제 공사로 논이 되었다가 다시 신도시로 바뀌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1994년 안산의 인구가 17,392 가구에 80,595명이었고 시승격 당시의 인구가 23,059 가구에 96,487명이었으며 시승격 1년만에 12만명을 넘어섰고 이제 시승격 20년이 되어 인구가 72만이라고 하니 인구증가율이 전국 최고라고 했을만 하다.
안산의 지도 또한 계속해서 바뀌어 왔고 그 중 가장 변화를 가져온 것이 시화방조제이다
화성시 서신에서 탄도(炭島)까지의 0.853㎞의 방조제(공사기간 1987. 10~1988. 4) 탄도에서 불도(佛島)까지의 0.180㎞의 방조제(공사기간 1987. 10~1988. 4), 불도에서 선감도(仙甘島)까지의 0.290㎞의 방조제((공사기간 1988. 2~1988. 2), 선감도에서 대부도로 연결되는 0.327㎞의 방조제(공사기간 1988년 5.~1988. 5) 시흥시(始興市) 오이도(烏耳島)와 대부도를 연결하는 11.206㎞방조제(공사기간 1988. 4월~1994. 1)의 준공으로 시화호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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