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소/시인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하면 주저 없이 ‘정직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직하게 살면 무언가 손해보고 산다는 느낌, 그것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정직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는 와야 합니다.
기윤실이라는 단체에서 오래전 발표했던 10가지 정직지표는 우리의 부정지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것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의 정직을 얘기한 것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 정직지표를 한번 되새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첫째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지 않는다.”입니다.
사회 구성원간 화평한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사자가 없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없던 얘기를 허위로 유포하고, 때로는 과장하여 말하지는 않았습니까? 작지만 신뢰가 깨지는 시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사회를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입니다.
그 주체가 ‘너’가 아닌 ‘내’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웃돕기 성금 혹은 자원봉사 활동이 연례 행사처럼 치러지는 사회, 학생들의 의무 사항으로만 채워지는 사회는 진정 바람직한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요즘은 자원봉사활동이 많이 활성화된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는 증거입니다.
셋째는 “사회질서의 법규를 지키고 있다.”입니다.
혹 건널목의 빨간 신호등에서 자녀의 손목을 잡아끌어 눈총을 받아 본적은 없으셨습니까? 말로는 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위법의 모범(?)을 보이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간혹 있습니다. 급하다는 이유로 건널목이 먼 곳에 있다는 이유로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이 기초 질서조차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하겠습니다.
넷째는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고 있다.”입니다.
편견이 뭐 정직지표에 들 수 있을까? 싶지만 지연, 학연에 의한 편견, 아니면 여성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편견은 우리가 쉽게 범하는 편견 중 하나입니다. 한쪽으로 편중된 생각은 또 다른 면을 못 보게 합니다. 똑바른 시선을 갖도록 해보시지요.
다섯째는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고 있다.”입니다.
글쎄요, 세금 꼬박꼬박 내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도 있던데... 그럼에도 우리가 그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백만장자들이 상속세 폐지에 오히려 반대했던 일은 그 사회에 정직이 살아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도 그런 사회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여섯째는 “개인적 이득을 위해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는다.”입니다.
사업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담당 공무원에게, 교통경찰에게, 자녀의 선생에게 생각 없이 주었던 뇌물, 그리고 이까짓 것 하고 받았던 뇌물이 우리 양심을 멍들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일곱 번째 “공공시설을 내 것처럼 아끼고 있다.”입니다.
놀이터에서 공원에서 휴지를 주워 휴지통에 넣어본 일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내가 가져갔던 쓰레기는 내가 되가져와야 하는 것쯤은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여덟 번째 “환경 및 자연 보호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입니다.
입산금지구역을 등산하지 않거나 환경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해 보십시오. 마음이 뿌듯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시화호, 광덕산, 수리산 등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펼쳐보십시오.
아홉 번째 “주어진 일을 성실하고 책임 있게 하고 있다.”입니다.
작은 일을 맡겼을지라도 최선을 다하며, 어떤 일의 나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 일이야말로 정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입니다.
신분이나 경력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말하지 않으며, 소득 규모를 과장하는 행위는 부정지표의 표본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히 사회에서 지켜야 할 일들이 정직지표라는 사실에 새삼 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한번쯤 정직지표를 읽으며 나를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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