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한류 시조 낭송대회’가 열렸다. 낭송을 즐기는 나로서는 반가운 자리였지만, 한편으로는 고개가 갸웃해졌다. 시조는 이미 우리의 고유한 문학인데, 굳이 ‘한류’라는 이름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회 취지문을 읽으며 그 의문이 조금 풀렸다. 시조의 세계화를 꿈꾸는 시조 문학 석·박사들이 모여 ‘한류시조문학회’를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익숙하게 쓰던 ‘한류’라는 말이 문득 낯설어져 사전을 펼쳤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요소가 외국에서 유행하는 현상.
짧은 정의였지만, 그 문장을 읽고 나니 ‘한류 시조’라는 말의 결이 분명히 보였다. 시조를 세계로 내보내고자 하는 마음, 그 소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대상 수상작은 사설시조였다. 평시조나 연시조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라는 시구를 읊조리는 순간, 이야기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바다가 되었다. 호흡이 길고 이야기가 풍성한 사설시조야말로, 세계를 향해 건네기 좋은, ‘한류 문학’이라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식처럼 느껴졌다.
‘한류’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지켜온 문화의 뿌리는 훨씬 깊다. 한글이 그렇고, 한복과 한옥이 그렇다. 한글은 이미 그 우수성을 스스로 증명해 왔으니 굳이 이름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옷과 집, 곧 한복과 한옥을 떠올리게 되었다.
양복은 활동에 편하다는 강점으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드러나는 자리에서 입는 옷은 몸을 정확히 잰 치수로 재단되어 딱 맞는다. 잘 맞는 옷은 입은 사람을 빛내준다. 그러나 몸이 조금만 달라져도 냉정하게 외면한다. 제게 맞지 않은 몸을 품어줄 여지는 없다. 사람도 옷도 서로를 재며 ‘딱 맞는’ 그 순간의 옷이다.
한복은 편리함만을 기준으로 만든 옷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변화가 시도 된다. 그러나 한복의 본질까지 버린다면 그것을 여전히 한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복과 양복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나는 ‘포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시민의 날 행사에 전교생이 참여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기다란 흰 치마를 입어야 했지만, 형편상 새 치마를 마련할 수 없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그때 한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속치마를 입자.”
그 말 한마디로 아이들은 저마다의 몸으로 흰 물결이 되었다. 크다고 흘러내리지도 않았고, 작다고 몸을 죄지도 않았다. 가난도, 서로 다른 몸매도 그날만큼은 그 품 안에 가려졌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옷이 사람을 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한복은 사람에게 맞춰진다. 허리를 조이지 않고, 길이를 강요하지 않으며, 몸이 변해도 모른 척하지 않는다. 한순간의 몸이 아니라 조금씩 변해가는 시간을 함께 입는 옷이다.
집도 그렇다. 한옥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리면, 오밀조밀한 공간들이 얼마나 살림을 알뜰하게 보듬어 주었는지 새삼 알게 된다. 마루 밑에 넣어 둔 멍석은 늘 제자리 같았다. 처마 밑 그늘에는 마늘이 걸렸고, 볕 좋은 벽에는 시래기가 매달렸다. 자잘한 농기구와 바구니들이 모양 그대로 공간에 스며들었다. 한옥은 반듯하지 않은 것들에게도 자리를 내주었다.
양옥에 살림을 들이면서는 공간의 반듯함이 먼저 느껴졌다. 반듯하지 않으면 어딘가 어색해지는 집. 둥글고 모난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맴도는 풍경 속에서, 나는 한옥의 느슨한 품을 떠올리게 된다. 도시에서 자란 깔끔한 막내며느리 같은 집이 양옥이라면, 한옥은 푸근한 맏며느리 같은 집이다.
옷이든 집이든,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제게 맞추기를 고집하지 않고, 사람에게 맞춰주는 것. 그러기 위해 조금은 넉넉한 품을 지니는 것. 나는 그것이 우리가 오래 지켜온 문화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류는 그 태도를 세계의 언어로 다시 건네는 일일 것이다.
사설시조가 이야기를 품은 노래의 힘으로 한류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한복과 한옥은 포용과 배려의 태도 자체로 한류 문화가 된다.
올해는 그 넉넉한 품에 기대어 살아 보고 싶다. 세계로 나아가는 한류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재지 않는 문화’이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