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 붉은 말띠의 해를 맞았다. 적토마의 기운으로 힘차게 달리겠다는 선언들이 신년 인사말로 쏟아진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신년사를 내놓았다.
연초의 기대감을 안고 코스피는 4,400선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방산 기업이 폴란드와 5조 원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수출액은 7,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국가적으로 어깨를 으쓱할 만한 성과다.
그러나 이 축포 속에서 서민들의 소외의 깊이는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수치로만 보면 분명 성장하고 있다. 계엄이라는 충격 이후, 지난해 대선이 지나며 국정 기능이 회복된 경제는 다시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정부의 외교 성과를 바탕으로 대기업과 전략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으며, 국제적 위상도 일정 부분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내수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가. 왜 서민들은 쓸 돈이 없고, 자영업자와 중산층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싸늘한가. 서민들은 언제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가.
성장의 지표와 국민의 삶 사이에 놓인 이 간극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구조는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AI를 넘어 피지컬 AI의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며, 제조업 현장에서도 사람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 없이 규모만 커지는 이러한 성장 구조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더 이상 경기 순환만으로 대기업의 성과가 서민 경제로 흘러들어 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우리가 논의해야 할 문제의 본질은 분배 구조다.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제시한 다섯 가지 대전환은 정부 역시 이 문제의식에 본격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분배 구조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첫째,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자본과 기회를 지역으로 분산시켜 성장의 공간 자체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국토 균형 발전을 통한 분배의 윤리다.
둘째,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모두의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수출 실적과 대기업 성과가 경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 아래, 중소기업·자영업자·노동자까지 성장의 성과를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분배 윤리를 말한다.
셋째, 속도 중심 성장에서 생명·안전 중심의 지속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산업재해와 사회적 위험을 감내하며 얻은 성장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는 기업과 노동자 간 분배 윤리의 문제다.
넷째, 불평등한 출발선에서 기회의 평등으로의 전환이다. 교육과 기술, 인재 양성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약속이다. 사회 계층 간 분배 윤리를 정면으로 다룬다.
다섯째, 개인 책임 사회에서 국가 책임 강화로의 전환이다. 복지와 돌봄, 사회안전망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며 국민의 삶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겠다는 방향 설정이다. 분배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국가의 일정한 개입이 필요함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이 다섯 가지 전환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성장의 결과는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수출 7,000억 달러와 5조 원 규모의 방산 계약은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내수 침체와 서민의 빈 지갑은 그 힘이 아직 국민의 삶으로 충분히 흘러가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장 담론이 아니라, 성장이 삶으로 연결되는 구조적 분배의 해법이다. 그리고 이번 신년사는 그 방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제시했다.
올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자들 역시 이 질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유권자들은 묻는다. 숫자로만 좋아지는 경제를 넘어, 그 숫자가 어떻게 내 삶을 바꾸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분배를 말하지 않는 성장은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분배를 회피하는 정치는 과연 책임 있는 정치인가.
인위적 작동 없이는 더 이상 경제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다. 이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장의 구호가 아니라 분배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실행 의지다. 성장의 성과가 국민의 일상으로 스며들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지금 정치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