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주부... 무대에 서다
반월방송·반월신문이 주최한 제2회 안산시 동대항 노래자랑 최우수상의 주인공은 안산동 대표 고민정었다. 마이크를 쥔 손에는 긴장보다 생활의 시간이 먼저 묻어 있었다. 안산동 대표라는 이름표 뒤에는 수십 년간 동네 골목을 오가며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쌓여 있었다.
그에게 지금 불리는 이름은 주민등록상 이름과 다르다. 어린 시절 잦은 병치레로 출생신고가 늦어졌고, 이후 생활 속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오게 됐다. 그는 “그 이름으로 불리며 자랐고,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수암동에서만 40여 년을 살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웠다. 동네는 삶의 터전이었고, 이웃은 가족이었다. 안산동 노래교실에서 총무로 활동하며 사람들 곁에 서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맡아왔다.
제2회 안산시 동대항 노래자랑 참가 역시 거창한 결심보다는 주변의 권유와 ‘안산동 대표’라는 책임감에서 시작됐다. 무대에서 부른 곡은 ‘사랑의 거리’. 화려한 기교보다 살아온 시간과 감정을 담아낸 노래였다.
이 무대는 우승보다 자신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한 순간이었다.
이제, 무대 위의 고민정이 아닌 삶을 노래해 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Q1. 먼저 독자와 시청자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도 함께요.
A. 안녕하세요. 저는 안산동을 대표해 제2회 안산시 동대항 노래자랑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은 고민정입니다. 수암동에서만 40년 넘게 살았고, 그곳에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셋을 키워온 평범한 가정주부예요. 남편과 아들 셋, 그리고 손주 둘이 있습니다. 특별한 직업이나 화려한 이력은 없지만, 사람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온, 아주 보통의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쓰는 이름은 사실 주민등록상 이름과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몸이 많이 약했고, 당시 주변에서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잦아 출생신고도 바로 하지 못하고 약 2년 뒤에 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그 시기에 가족이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며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이름을 바꿔 불러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출생신고는 기존 이름으로 했지만, 생활 속에서는 이 이름으로 쭉 살아왔어요.
그래서 저에게 ‘고민정’이라는 이름은 따로 선택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제 삶과 함께 이어져 온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Q2.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하셨는데, 그런 분이 안산동 대표로 무대에 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처음엔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노래교실에서도, 동네 모임에서도 “한번 나가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지만, 제가 대표로 나간다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안산동 이름을 달고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잘하든 못하든, 안산동 사람으로서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결국 용기가 됐습니다.
Q3. 수암동에서만 40여 년을 살았다고 하셨는데, 그 시간이 고민정 씨 삶에 어떤 의미인가요?
A. 제 인생 자체예요. 연애도 수암동에서 했고, 결혼도 했고, 아이 셋도 그 동네에서 키웠어요. 남편도 농업 관련 가게에서 만났고요. 이사 한 번 안 가고 그렇게 오래 살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져요. 골목, 시장, 이웃들 하나하나가 다 제 삶의 일부예요.
Q4. 무대에서 부른 곡이 ‘사랑의 거리’였습니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제 인생이 떠올랐어요. 화려한 성공 이야기보다는, 평범하지만 정이 있고 시간이 쌓인 삶을 노래하는 곡이잖아요. 안산에서 살아온 제 시간들, 가족과 이웃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어요. 그래서 잘 부르겠다는 욕심보다는, 진심으로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Q5. 무대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전문적인 연습을 하셨나요?
A. 전문적인 연습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어요. 학원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연습한 것도 아니고요. 그냥 제 일상 속에서 계속 노래를 불렀던 것 같아요. 설거지하면서도 흥얼거리고, 장 보러 가는 길에도 마음속으로 불러보고, 손주 재우고 나서 조용해진 집에서 혼자 다시 불러보고요.
노래교실에서 배운 기본은 있었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기술보다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어떻게 불러야 점수를 잘 받을까’보다는, ‘이 노래를 들으면 내 삶이 보일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노래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연습을 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아요.
Q6.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던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언제인가요?
A. 무대에 처음 섰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조명이 너무 밝아서 관객 얼굴도 잘 안 보이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노래 첫 소절이 잘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어요.
그런데 노래가 중반쯤 지나니까 박수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드니 관객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에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는 떨림보다는 마음이 조금씩 풀리면서,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장면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Q7. 최우수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첫 반응은 어땠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름이 불렸을 때도 ‘설마 나겠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그래서 순간적으로 반응이 늦었어요.
집에 가서 아들들한테 이야기했더니 첫째가 “엄마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어요. 서운하기보다는, 가족들도 제가 상 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지금은 그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됐어요.
Q8. 가족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신다면요.
A. 남편 하나에 아들 셋이에요. 첫째는 1985년생이고, 그 아들에게서 손주 둘을 봤어요. 나머지 둘은 서른둘 쌍둥이예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학교나 단체에서 회장이나 임원 같은 역할을 자주 맡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제가 그 사람들을 맞이하고 챙기는 역할을 하게 됐죠. 그게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좋았고, 사람들 웃는 걸 보는 게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Q9. 원래부터 ‘끼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본인은 어떻게 느끼시나요?
A. 끼라고 표현하면 조금 부담스럽고요. 그냥 사람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앞에 나서는 게 싫지 않았고, 분위기 살리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안산동 노래교실에서도 총무를 맡았는데, 누군가 앞에 서야 할 때 그 역할을 맡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성격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무대도 두렵긴 했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어요.
Q10. 한동안 노래교실에 나오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A. 남편이 식도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약 2년 정도 노래교실에 못 나갔어요. 그때는 노래를 부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하루하루가 버티는 시간이었죠.
그런데도 노래교실 오숙 강사님이 계속 연락을 주셨어요. “안 나와도 괜찮다”, “지금은 가족이 먼저다”라고 말해주셨죠. 그 말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고마웠어요.
Q11. 고민정 씨에게 오숙 강사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A. 그냥 너무 좋은 사람이에요. 밝고, 활기차고,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쳐요.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은 훨씬 깊어요.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을 정말 잘 챙겨주세요.
힘들 때 괜히 조언을 늘어놓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에요.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저한테는 노래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붙잡아준 사람이기도 해요.
Q12. 최우수상 상금 70만 원은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A. 남김없이 다 썼어요. 주변 모임에 한턱 쏘느라고요. 노래자랑 끝나고 회식도 했는데, 그날만 30만 원이 나왔어요.
돈을 모아두는 것보다, 사람들하고 웃고 이야기하고, “고생했다”는 말 듣는 게 더 좋았어요. 상금이 오래 남지는 않았지만, 그날의 분위기와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어요.
Q13. 노래자랑 이후 삶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A.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도 아직 할 수 있구나’, ‘나이 들어서도 도전해도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망설였을 일도, 지금은 한 번쯤 해볼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어요. 일상이 조금 더 밝아졌고, 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 것 같아요.
Q14. 앞으로 행사 무대에 설 의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A. 네,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어요. 꼭 큰 무대일 필요는 없어요. 동네 행사든, 작은 자리든 상관없어요.
노래로 사람들 즐겁게 해주고, 잠깐이라도 웃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같이 즐기는 무대면 좋겠어요.
Q15. 마지막으로, 노래자랑 무대를 망설이는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잘해야 나가는 게 아니에요. 용기 내서 서는 게 먼저예요. 무대에 서는 순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설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대에 서봤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