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리 없는 아우성

2026-03-25     박주호 소설작가

“이런 답답하기는 잘 나가다가. 이게 바로 스퀴즈플레이라는 거라고. 이런 작전 한두 번 봤나! 잘 보라고? 주자가 먼저 뛰고 타자가 어떻게 해서든 공을 쳐 내는 작전이라고! 타구가 정직해서 투수 앞으로 굴렀지만 그 상황에서 홈으로 던질 여력이 없었던 거야! 이래서 어디 기사나 제대로 쓰겠어!”

“누가 그걸 모릅니까. 노아웃 3루 상황에서 무모하다는 것이지요.”

K는 기뻐하면서도 무리한 공격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왕근은 투수의 와인드업 순간 뛰기 시작했고 박종민은 투수의 공을 정확하게 받아쳤다. 한 발짝이라도 늦거나 타구가 높이 뜬다면 병살타로 이어져 세 번째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 일이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투수의 공을 잘 받아친다는 점을 감안해서 과감한 승부를 던졌다. 첫 득점은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이루어진 소리 없는 약속이었다.

기쁨도 잠시, 정 소장과 K가 언성을 높이며 대립하게 된 것은 6회 말 성심학교의 수비에서 비롯되었다. 김 감독이 우려하는, 친선경기에서 드러났던 청각장애 선수들만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 선수들의 사기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평범한 내야 땅볼에도 안타를 허용했고, 높이 뜬 타구도 잡다 놓치는 실수마저 생겼다. 타구의 순간포착은 수비수가 공을 잡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타구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 공을 쫓아가는 데에도 한 템포 늦을 수밖에 없었고, 공을 잡고 던지기까지의 동작 전환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비의 불안과 함께 투수 서승덕의 어깨도 점점 무뎌져 갔다. 연타석 안타와 포볼로 인한 만루 상황에서의 점수는 일 대 칠로 여섯 점을 뒤지고 있었다. 응원단원들은 응원을 멈추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고 몇몇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수그리고 있었다.

“이건 지고 이기고 문제가 아니라 대등한 경기조차 될 수가 없습니다. 점수를 더 내주면 콜드게임입니다.”

“나도 지켜보고 있네. 마치 콜드게임에 겁에 질린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데 지난 봉황기 때에는 콜드게임이 무려 일곱 번이나 나왔다지? 시간의 단축이지 그렇게 억장 무너질 일은 아니라고. 왜 또 장애인 올림픽에 야구 종목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할 텐가?”

“지금 저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일어날 수도 있겠지 하고 단순하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소장님 아들을 한번 보십시오.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조차도 버거울 정도입니다. 고함을 지르고 파이팅을 외치는 상대 선수들과 달리 선배 선수들에게 한 마디 힘을 실어 보낼 수 없지 않습니까. 장애인 올림픽은 대등한 사람들끼리 모여 우열을 가리는 떳떳한 경기입니다. 장애인 올림픽이라고 해서 금메달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 아이들만의 무대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대등하고 공평한 경기가 될 수 없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에 야구 종목을 신설하고 저 아이들을 그 올림픽에 내보내는 것은 장애인을 철저하게 구분 짓겠다는 의도 아닌가? 그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탄탄한 올가미라고. 지금 저 아이들은 그 벽을 허물고 있다고. 장애인이라는 벽 말이야. 그런데 일반인과는 겨를 수 없는 선을 그어 놓겠다는 것은 장애인들끼리만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음을 아이들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일 아닌가? 너희는 장애인이니 장애인들끼리만 힘겨루기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상대 선수들은 지금 우리 아이들을 자기들 적수로 생각하고 경계를 하고 있는 거라고.”

그때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중견수 앞으로 타구가 높이 떴다. 그런데 그 공을 잡지 못하고 뒤로 빠트리면서 석 점을 내주어 콜드게임의 한계선을 넘어서고 말았다.

“보십시오. 타구가 공중에 높이 떠야만 아이들이 뒤늦게 쫓아갑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이 두 팀의 선수들이 어떻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물론 저 아이들만의 문제가 보통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지. 하지만 약점은 누구나 있지. 지금 문제는 11개월 준비한 아이들과 3년 아니 6년 이상을 갈고 닦은 아이들과 그런 식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럼 저 아이들이 그만큼의 경력이 쌓이면 듣지 못해 일어나는 문제가 자연히 풀립니까? 저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을 줘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의 고통은 헤어나기 어려운 곤경에 빠뜨릴지도 모릅니다.”

정 소장은 다시 응원 단상에 올라 막대풍선을 흔들며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쉰 목소리를 내면서도 계속 외쳐 대는 소리에는 응원만이 목적이 아닌 K에 대한 항변이 짙게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