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학의 세상사는 이야기 - 고잔요양보호사교육원 원장

아름다움이 짙게 물들어 가는 가을 울긋불긋 색으로 칠해도 이렇게 아름답게 나오지 않으련만 가을은 자연을 새롭고 이쁘게 물들여 가고 있다. 요즘은 드론으로 조금만 하늘로 올려서 사진을 찍어도 금방 물든 단풍과 하천과 도심의 빌딩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안산을 볼 수 있다. 자전거로 거의 매일 달리지만, 지금처럼 아름다운 색의 자연으로 물들어진 안산을 볼 수 있는 건 이 가을이 잠깐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가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여름옷도 하나둘 들어가고 두꺼운 겨울옷이 자연스레 따시고 좋다. 지난겨울 호되게 감기를 앓고 올해는 백신을 제대로 맞으려고 하는데 주변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감기도 무서워하지만, 백신도 무서워 피해가야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잔뜩 긴장하며 마스크로 코와 입을 잘 가리고 생활하고 있어 이제 감기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되었는데 정작 독감을 예방하는 백신을 두려워해야 하다니 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보도하는 매스컴이 잘못된 건지 백신 관리가 잘못된 건지 헷갈리는 언론 보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사망하는 사례 백신 접종으로 사망하는 사례 독감으로 사망하는 사례 이래저래 병으로 죽으나 어려운 살림으로 죽으나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로든 위로가 되지 않아 보인다.

어려운 삶의 환경을 배경으로 한 ‘용길이 네 곱창집’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이 ‘곱창’이라는 말이 들어가 재미있고 맛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렵고 힘든 시대적 배경과 다양한 가족 구성원과 곱창집을 꾸려가는 가장의 확고부동한 삶의 철학이 가족 구성원을 따뜻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아주 인상적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거주 환경이 일본 1969년 일본 오사카 공항 근처의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소음에 판자촌 재개발로 철거가 이루어지는 곳에 전쟁 후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용길이네 곱창집 필자가 잘 아는 안산의 ‘문순자 곱창’과도 오버랩이 잘된다. 영화 제목이 곱창집이라는 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가는 과정일 거라는 짐작이 가는 내용이다. 한잔의 소주에 둘러앉아 목놓아 노래 부르며 상을 두들기며 흥을 돋구던 판자촌 술집의 거리에 보던 곱창집이 그 시대의 어렵고 힘든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젊은 아들이 곱창을 좋아하는 걸 보고 좀 의아하기도 했는데 ‘문순자 곱창’의 순자 누이의 인연으로 안산의 중앙역 뒤 곱창 가게가 가득 들어선 거리에 가끔 가곤 한다. 어쩌면 이 영화도 그래서 무슨 영화지 하면서 보게 되었다. 용길이 역의 김상호 배우의 역할이 극을 주도해 가는데 짧은 영화에서도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제각각이면서도 조금은 늘어지는 듯한 영화인데 재혼한 용길이 아내와 꾸려나가는 인생은 자신의 딸과 아내가 데리고 온 딸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주변의 몇 안 되는 손님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좁은 공간과 변하지 않는 환경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용길이 새로운 이국 환경에서 아들을 잘 키우려고 자신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아들을 일본학교에 보내지만, 아들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설 자리를 잃어가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설 자리를 만들기를 고집한다. 아내는 아들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전쟁 후 삶의 터전을 일본으로 건너와 살아남으려는 방법으로 악착같이 사는 용길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잦은 결석으로 유급을 하게 되는 아들을 다른 학교에 보내도 되는데 굳이 유급을 해서라도 일본학교에 다니게 해야지만 일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밀어 부쳐보지만, 아들은 그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영화에서 다 비치지는 않았지만,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소리에 집 지붕 위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가끔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신호이기도 한데 용길에게는 판자촌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로지 아들을 밀어붙이는 거 결국은 아들을 잃고서야 딸들의 배우자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따듯한 존중과 배려로 맞아들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한 편의 영화처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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