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영(소설가)의 스마트 소설

“곰 선생님, 은행동 다 왔는데요. 두산아파트는 어디쯤이죠?” 곰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깊은 숨을 내쉰 후 감긴 눈을 힘겹게 뜬다. 곰의 인상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표정으로 구겨져 있다. 두툼한 어깨살 때문에 우스운 모양이지만 곰은 나름 팔짱을 끼고 있다. 그의 겨드랑이 틈에 겨우 보이는 손톱에 빛이 난다. 네일아트를 했는지 말려들어가는 손톱의 틈새에 아교가루가 채워져 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그래? 직업의식이 있긴 해? 대리가 손님한테 뭘 묻는 거야? 그것도 술 마신 동물에게.” 아무렴. 그리고 곰은 길 설명을 한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짐승의 소리로 들린다. 나는 내 귀를 후비고 귀를 기울였지만 곰의 설명은 끝났는지 손톱을 튕기고 있다. 다시 묻고 싶지만 영양공급이 충분한 그의 손톱이 된 발톱의 빛을 본 사람이나 동물은 몸이 저절로 움츠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룸미러로 보니 곰은 딱히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쏘아보고 있다. 그 대상이 나인지, 세상인지, 혹은 자신인지 모르겠다. 곰의 입술이 씰룩거릴 때 이빨에 낀 대나무 이파리 조각이 보였다. 창밖의 조짐이 이상하다. 눈이든 비든 몰려올 것 같다. 집에 있는 B가 생각난다. 이런 날씨면 어김없이 부침개를 해달라고 할 것이다. 권고사직을 당한 지도 3년이 지났다. B의 우울 증세가 나를 더 우울하게 하고 있다. 한탕만 더 뛰고 막걸리를 사서 집에 가야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 곰이든 뭐가 됐든 불러주니 감사할 일이다. “죄송합니다. 은행동은 알지만 원체 아파트가 많아서요.” 곰의 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나는 흐릿해지는 정면을 주시한다. 곰의 실룩이는 주둥이를 보면서 여차하면…,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내 재킷조각이 그의 이빨에 낀 상상을 뿌리치듯. “이봐, 대리라면 곰이 은행동 두산아파트 가자고 했으면 두말없이 두산아파트에 딱 내려줘야 하는 거야.” 처음 전화통화 할 때부터 목소리에서 취기를 느꼈지만 그래도 곤란하게 됐다. 내비의 잭도 빠져있다. 안 그래도 시비를 걸려고 기회를 노릴 동물을 두고 창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곰에게 어떤 시비를 당할지 모를 일이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알려주신다면….”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죄송합니다가 입에 붙었다. 정말 뭐가 그리 죄송한지. 술 취한 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취하지 않았던 것이 죄송할 일인지도. 또다시 언어로 들리지 않는 짐승의 소리가 컹컹, 왈왈댄다. “얼른 가.” 도대체 어디로 얼른 가라는 건지. 하는 수 없이 나는 추측을 해본다. 아파트 이름이 열 개가 넘는 대단지, 큰길에선 본 기억이 없으니 뒷골목. 다행히 내가 아는 한 좌측에는 두산이란 아파트는 없다. 직진하면 은행동을 벗어나 대야동으로 들어가니 우측일 것이다. 아, 추측하다 보니 어릴 때가 생각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꽤 똑똑하다 소리를 들어왔다. 아마도 셜록 홈즈, 알센 루팡, 형사 콜롬보 등을 좋아했던 것이 이유가 됐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아가사 크리스티,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정일까지 추리물을 섭렵했다. 나름 주의, 집중력을 훈련해오면서 탐정이나 형사, 해결사가 되리라 했다. 그 노하우가 이렇게 동물의 차와 목숨을 대리하게 될 줄은. 하긴 대리운전을 한다는 것도 고도의 주의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다. 아무렴. 아직까지 나는 대리운전을 할 때마다 저절로 몸을 움츠린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술을 마시면 모두 매한가지로 포악하고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내가 알던 순한 동물의 캐릭터 역시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 언제부터 동물의 시대가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들이 있기나 한지 몰랐다. 대리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렇게 많은 동물이 사람을 대리로 부르는 것을 알게 됐다. 한갓진 곳에 오리, 닭 등의 조류 이름을 가진 식당과 몇 개의 아파트가 있다. 참 이상하다. 와 삼겹살, 국민정육, 조류 농장 등의 이름은 있지만 내가 알기로 곰이 들어간 곳은 팬시점 밖에 없다. 푸라고 했던가. 하여튼 천만다행으로 두산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주차해 봐.” 우리끼리 똥콜이라고 하는 은어를 이런 차를 두고 한 말이다. 외진 곳에서 콜을 하고 또다시 콜 받기 힘든 외진 곳. 게다가 스틱은 몇 천 원 더 줘야 하기 때문인지 콜한 사람은 굳이 스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긴 처음부터 곰이라고 밝히지도 않는데 스틱이든 오토든 무엇이 더 문제가 될까. 아무렴. 또 외제차보다는 차라리 화물차가 편하다. 외제차를 끄는 동물들은 절대 팁이란 있을 수 없고 한 치도 용서할 수 없는 정확한 주차, 조작키에 서툴다면…, 먹이를 포획하며 질러대는 짐승의 소리와 함께 내 목 언저리에 구멍이 날지도 모른다. 곰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낸다. 천 원짜리가 꽤 묵직하지만, 그 속에서 천 원짜리 두 장과 만 원짜리 한 장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돈을 받기 전까지 기다리는 이 시간은 언제든 어색하고 치사하다 싶다. 하긴 네일아트까지 한 곰의 두툼한 손이 익숙하게 돈을 뽑아내는 것은 더 어색하다. 가로등에 비치는 그의 손톱 빛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의 이빨은 왜 이리 추접스러운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덩칫값 좀 해라, 하고 비웃는다. 희한한 것은 어떤 동물이든 아무리 술에 취해도 돈 계산만큼은 명확하다는 것. 내 참, 더러워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수많은 동물이 건네는 지폐에는 영락없이 동물그림이 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위인이라고 가르침을 받았던 인물, 사람이다. 하지만 인물이 들어간 돈을 사용하는 것은 동물들이다. 아무튼. 세종대왕과 이황 선생 두 분을 내 작은 포켓에 넣고 습관이 잘든 인사를 한다. “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나는 필요 이상의 낮은 각도로 꾸벅 인사하고 뒤돌아선다. 대리를 부르는 동물들은 두 종류다. 얼마 안 마신 동물과 많이 마신 동물. 얼마 안 마신 동물은 꼭 대리를 부른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인지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류는 제 스타일을 고수하며 차선까지 지적질이다. 많이 취한 사람은 꼭 자신이 운전하려고 드는 짓거리를 해댄다. 애초부터 이런 사람을 가려내어 배차취소해서 500원의 벌금을 물리는 게 낫다. 맹하고 있다가는 코를 골고 자버리는 것이 태반이니까. 내비게이션이야 차마다 다 있지만 업그레이드는커녕 터치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 만나자마자 정확한 목적지를 묻는 버릇이 몇 번 당해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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