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애(수필가·문학평론가)의 생각정원

금줄을 보았다. 모처럼 친구와의 점심 약속을 전통 농원으로 정했는데 마침 그곳 장독대에 금줄이 쳐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청국장 맛도 근사했고 수천 개의 항아리도 놀라웠지만 사람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길게 쳐놓은 금줄을 만난 것은 새삼 반가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고향은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그래서 금줄을 발견한 것이 유난히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금줄은 아기를 출산했을 때 삼칠일(三七日) 간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아기가 무탈하기를 바라는 산기(産忌)의 표시로 대문 앞에 달았다. 금줄이 걸리면 동네 사람들은 스스로 출입을 자제하고, 아기의 무사함을 기원했다. 또한 일 년에 한 번 정월대보름 경, 마을 동제(洞祭)를 지낼 때도 쓰였다. 제사를 지내기 전 제주(祭酒)의 집, 동네 어귀에 있는 서낭당과 느티나무 그리고 우물에 금줄을 치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곳을 지날 때면 괜히 무섭기도 하고 혹시라도 서낭당에 들어가면 ‘부정 탄다’는 어른들의 말에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금줄은 그 자체로서 신성함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금줄은 어느 곳에 걸든지 그곳이 신성한 곳임을 의미한다. 물론 좋지 않은 기운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장독대에 금줄을 돌려놓는 것 역시 같은 뜻이다. 장을 담그는 일은 그 집의 식생활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장을 담가 잘 익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그 집 식구의 일 년간의 식생활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장 담그는 일을 매우 중요시하였고, 장 담그는 솜씨를 며느리에게 전수하였다. 민간에서는 장맛으로 그 집안의 내력과 가풍을 안다고 하였고, 장맛이 변하고 변하지 않음을 보아 그 집안의 유고(有故)·무고(無故)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요한 집안 행사인 장을 담그고 나서는 부정 없이 잘 익기를 바라는 뜻에서 장독에 금줄을 둘러놓았던 것이다.

금줄은 우리 잠재의식의 밑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독특한 문화였다. 새끼를 꼬아 걸쳐놓는 행위에 공동체가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 의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줄은 이웃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무언의 약속이었던 셈이다.

요즘 새삼 인터넷이 뜨겁다. ‘저작권 위반 과태료 3회시 사이트 폐쇄’ 입법예고, ‘명예훼손 글 삭제 않으면 포털 처벌’. ‘사이버 모욕죄 신설’

정보화 사회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공간이고 이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것이 우리에게 자산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이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명분을 앞에서 허위 글을 게재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때론 진실을 왜곡시키고 있다. 불법과 무질서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인터넷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을 통한 의사 표현의 자유와 한계라는 새로운 장애물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권리는 도덕적 의무를 동반한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권리이다. 그러나 타인의 권리 즉,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는 도덕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익명성을 이용하여 편파적인 비판과 자신만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이기주의의 소산이다. 우리는 길을 건너야 할 때, 걸음을 멈추고 신호등을 바라본다. 그리고 녹색 등이 켜지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약속이며 의무이다. 또한 선(善)의 실천이다. 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약속을 어기고 경계를 넘어가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농원을 걸어 나오며 장독대에 쳐 놓은 금줄을 다시 보았다. 금줄에 출입 금지라고 써 놓은 것도 아닌데 누구도 그 장독대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천 개의 항아리를 구경하려면 금줄을 넘어가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금줄을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를 위해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바람에 풍겨오는 청국장 냄새가 구수하다.

힐끗 쳐다보는 금줄에 빨간 고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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