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수필가·시인

영화 ‘발지 전쟁’에서 독일군은 영어에 능통한 병사들을 뽑아 미군 헌병으로 위장하여 길이 갈리는 미군의 진격로를 점거하고 그곳의 방향 표지판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놓고, 그곳에 도착한 미군에게 맞지 않는 다른 방향을 가리켜 미군의 작전에 큰 혼란을 일으킨다. 나중에는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 전원 사살되지만, 잘못된 방향 표지판은 사람을 절벽으로 안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동네 뒷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잘못하면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무서웠다. 영국 특수부대 출신 오지 탐험가 ‘베어’는 밀림이든 사막이든 설원이든 반드시 벗어난다. 그는 길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달나라에 떨어트려 놓아도 지구로 돌아올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어떤가? 해 뜨는 쪽이 동쪽이요 지는 쪽이 서쪽이라는 것밖에는 모른다. 이런 나를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트려놓고, 목마르고 허기져 죽게 하지는 않을 터이니 사막을 벗어나 보라고 한다면, 살아나올 수 있을까? 오직 한 쪽 방향으로만 몇 날 며칠이고 걸으면 동 서 남 북 어느 쪽으로든 사막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관건은 과연 일직선으로만 걸을 수 있겠느냐이다. 그때에 정확한 방향 표지판을 하나 만난다면, 나는 광야에서 구름기둥을 만난 것과 같을 것이다. 한데 방향 표지판이 왼쪽에 서 있었다면 고마운 길 안내역이 되었겠지만 오른쪽에 서 있는 바람에 나를 1km 남긴 사막 끝을 다시 100km 펼쳐진 쪽으로 돌아서게 했다면, 표지판을 그렇게 설치한 사람은 未必的故意에 의한 살인죄도 적용 받을 만하지 않을까?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능력을 ‘歸巢本能’이라고 한다. 먼 곳에서 날린 비둘기가 돌아오고, 연어가 모천으로 돌아오고, 진돗개는 700리를 걸어서 떠난 집으로 돌아오고, 소도 고삐를 등에 얹어주고 가게 내버려 두면 알아서 제 집을 찾아가고, 사람은 아침에 나갔던 집으로 저녁에 돌아온다. 방향 인지 능력이나 기능이 고장 나 돌아오지 못하는 연어나 비둘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길을 잃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소설 속의 엄마도 있다.

천안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택시에서 내려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였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였더니 길은 건너고 오른쪽으로 돌아 언덕을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언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향했더니, 그곳은 내가 가려던 곳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표지판을 잘못 읽었나 하고 처음부터 다시 했다. 다시 했어도 여전히 나는 아까 왔던 길을 다시 밟아가고 있었다. 다시 내려와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물었다. “영안실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이리이리 가라고 가르쳐 주는데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보니, 길을 건너서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을 무시하고 직진하여 계단을 내려갔더니 바로 그곳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표지판은 잘되어 있는데 내가 무지했거나, 아니면 어쨌든 표지판이 그렇게도 읽을 수 있게 충분치 못했거나. 길을 건넌 자리에 표지판 하나만 더 있어 영안실 쪽을 가리켜 주었다면, 그곳에서 우향우하여 언덕을 몇 번이고 오르내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방향 인식이 잘못되면 면역 체계는 자기 몸을 공격하게 되어 류머티즘이 일어난다.

“가만, 이 안내도는 이상하다. 이 안내도를 믿고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시청에 가서 여기가 라성 호텔이냐고 묻고, 라성 호텔에 가서 여기가 경찰서냐고 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기 있는 이 안내도는 또 뭐냐? 오른쪽으로 아무리 가도 안산시청과 단원 경찰서가 안 나오고, 왼쪽으로 경기도 끝까지 가도 라성 호텔에 당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논 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라면 벌린 두 팔이 동서남북과 맞아야 할 일이 없다.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나침반이라면, 남과 북으로 놓였을 때만 맞는 방향을 가리키지만, 나침반을 90⁰ 돌려놓으면 북쪽이 서쪽이 되든가 남쪽이 동쪽이 되든가 할 것이다. 달나라에서 방향 표시가 잘못된 안내도가 서 있다면 어찌 될까? 지구로 돌아오려던 아폴로 11호는 저 플레이아데스 성단으로 가든가 아니면 1광년 밖의 블랙홀로 향하게 될는지도 모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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