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영(소설가)의 스마트 소설

“엄마 우어? 우어?” 민재는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나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차, 했지만 또 잡히고 말았다. “엄마, 우지 마, 우지 마. 가자, 가자 언능!” 너무 정확하다. 벽시계를 보니 저녁 산책할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나물 껍질을 벗기다 까무룩 졸았다. 잠든 동안 여자는 울고 있었나보다. 여자는 자주 꿈을 꾼다. 여자가 꾸는 꿈은 한 번도 슬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직도 여자의 흐느낌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여자는 욱신거리는 두통에 칼을 떨어뜨렸다. 아차, 했지만 늦었다. 민재는 여자가 놓친 칼로 나물을 두 동강 내고 있다. 단순한 ADHD나 자폐증으로만 판정할 수 없는 심화 자폐증, 불치병이다. 고칠 수 없는 것은 ‘불치’라는 말로 환자 어미의 평범한 인생도 ‘불치’가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집착하는 민재에겐 피를 볼 때까지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여자는 슬쩍 자리를 뜬다.

요기에 시달린 사람처럼 변기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 천천히 옷을 추리며 일어나다 거울 속의 여자와 마주친다. 거울 속에 비친 여자의 얼굴, 눈빛이 민재와 흡사하다. 천진함 뒤의 섬뜩함. ‘내가 무슨 짓을….’ 여자는 거실로 뛰어나가 모두 짧게 잘린 나물을 보자 서둘러 칼을 뺏는다. 여자의 손바닥에 나물 길이만큼 핏자국이 났다. 민재는 피를 보고 물러난다. 겁먹은 민재의 표정에 여자의 가슴이 찌르르 하는 고통으로 쓰라린다. 정작 베인 곳은 손바닥인데 여자는 제 가슴을 쥐어 잡고 숨을 몰아쉰다. 날카롭고 뾰족한, 민재 놀이의 끝을 아는 여자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진정 어미인가, 어미 자격이 있는 것인가. 가슴을 움켜쥐고 체머리를 흔든다. 여자는 민재의 머리를 딸아이처럼 쓰다듬는다. 민재의 젖은 눈이 여자를 본다. 딸아이도 가끔 민재에 대한 미안함에 여자처럼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은 것인지 모른다. 여자는 피가 흐르는 손을 손수건으로 동여매고 늦은 산책을 서두른다.

집을 나서다 보니 도시락이 가볍다. 그제야 빈 도시락이란 것에 또다시 아차, 한다. 민재는 여자가 당황해하는지도 모르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며 신이 나 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도시락과 우산을 가지러 간다면 산책 시간이 어그러진다. 올라가면 엘리베이터 안이, 같은 동 사람들이, 경비들이 민재의 소란만큼 시끄러워질 것이다. 여자는 체념하고 비를 맞으며 민재의 뒤를 따라 공원을 향한다.

민재가 야-옹 소리를 낸다. “엄마, 야오이, 야오이.” 민재는 웅크리던 몸을 펴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찾아 공원길로 들어선다. 고양이 눈과 마주치자 민재는 여자의 등에 찰싹 달라붙는다. “엄마 어부바.” 여자가 업지 못하자 이번엔 도시락을 빼앗는다. 도시락을 서둘러 열던 천사처럼 예쁘게만 보이던 민재의 눈, 고양이 눈처럼 광기가 서린다. 빈 플라스틱 도시락으로 민재가 맹수처럼, 냉혹하게 여자를 처단한다. “야오이, 내 간식 줘. 야오이 주게. 야오이 자바!” 민재의 새로운 규칙인 고양이에게 간식 주기. 고양이의 피를 보면 끝이 날까. “저, 저런….” 비 오는 저녁 산책길에 누군가 여자와 민재를 발견했나 보다. 아니 민재의 괴성이 사람을 모았겠다. 한참을 두들겨 맞고 코피가 터지자 민재가 물러난다. 그제야 경찰이 출동했다. 여자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민재만 봐도, 여자만 봐도 서로 알아볼 것이다.

여자는 까치가 제 새끼를 해하는 광경에 제 몸을 자해하던 곳을 무심히 지난다. 들숨과 날숨을 고르며 느린 걸음으로 숲 깊이깊이 들어간다. 길이 없을 막다른 곳에 가서야 참치 캔을 민재에게 넘긴다. 민재와 함께 고양이를 기다린다. 민재는 ‘고야이, 야오이’ 하며 지치지도 않고 불러댄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남의 새끼를 잡아먹는 야수가 아이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 여자는 드디어 섬뜩한 눈빛과 마주쳤다. 여자의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찔한 어지러움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다. 다행히 단단한 돌방석이 여자를 지탱해준다. 눈을 감아도 눈 속의 세상이 빙빙 돈다. 고양이의 가증스런 진실을 아는 여자는 아이 같은 소리를 내는 고양이에게 살기를 느낀다.

여자는 어느새 옆에 앉아 있는 민재와 고양이를 발견하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천진난만한 민재의 미소, 처연한 모습으로 민재가 주는 참치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는 고양이의 모습도 마치 민재 같다. 여자의 몸에 소름이 돋자 여자는 있는 힘껏 고양이의 목을 잡아챈다. 깜빡거리며 귀여운 표정을 지었던 고양이 눈빛의 섬뜩한 살기가 전이된다. 여자는 카디건 호주머니의 폐전선으로 고양이의 목을 친친 감는다. 감아도 감아도 끝이 없이 긴 줄이다. 여자는 쉬지 않고 날숨을 참아가며 폐전선의 끝이 보이자 꼼꼼한 매듭을 지으며 소름 돋은 팔에 온 힘을 들인다. 한쪽은 천진, 한쪽은 살해자의 눈빛, 고양이의 눈이 다르게 빛을 발하며 본색을 보인다. 남의 새끼를 잡아먹는 고양이는 여자의 새끼를 위해서 잡아먹혀도 된다고 여기는 여자의 온몸이 오소소 떨린다. 여자의 손이 하얗게 질려있다.

‘어마, 어마, 야옹, 야옹.’ 착한 눈에서 여자가 매를 들 때마다 아파하던 눈빛이 보인다. 매를 들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 매는 민재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한 위협용이었지만 덩치가 커진 지금의 민재에겐 어림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 매를 뺏기고 나면 머리털이 아니라 여자의 온몸이 고장 나고 만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꼭 아들의 울음소리만 같다. 여자는 생각한다. 아이에게 걸어둔 빗장을 풀어야 하는데. 아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고양이 울음소리는 애절하기까지 하다. 정말 애절하다면, 까치처럼 애절하다면 미치는 게 정상이지.

‘우어 우어’ 하는 민재의 거친 숨소리도 이명처럼 들린다. 저 소리가 진정돼야 내 두통도, 민재의 룰도 다하는 것인데. ‘피, 어마 피…’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여자의 꽉 다문 입술에서 미지근한 액체가 고양이의 얼굴에 떨어진다. 그제야 여자의 숨통이 트인다. 여자는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울음소리의 끝을 기다리며 감았던 눈을 뜬다.

‘어마, 어마.’ 여자의 머리채를 잡으려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 끝이 파르르 흔들리다 경직된다. 여자의 민머리에 생채기를 남겼던, 파르르 흔들렸던 발이 축 처진다. 눈꺼풀이 감겼다. 맑음도 광기도 끝났다. 초록도 파랑도 없다. 꼭 잠자는 아이 같다. 평화롭다. 여자는 편히 잠든 아이의 모습에서 잠잘 때는 천사 같은 모습을 본다.

그러므로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는 신이며 그 생명을 거두는 것도 신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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