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수필가·시인

아주 오래 전이다. 한일 야구 경기에서 일본 선수의 볼 카운트가 풀카운트였다. 제5구가 내 눈에는 ‘볼’로 보였다. 타자도 그런 생각이었는지 방망이를 놓고 1루로 나아갈 동작을 취했다. 그때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타자는 나가려다 말고 자기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자기 동료들에게 웃으면 한 마디 하는데, 물론 그 말이 들릴 수는 없었지만 내 느낌에 “세상에, 이것이 스트라이크래.” 하는 것 같았다.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한국과 독일 전 때 한국이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선언으로 골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것이 비디오 판독 대상이 되었다. 판독실의 결과를 통보받은 주심이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한국 선수들은 뛰어오르고 독일 선수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비디오 판독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한국의 2 : 0 승은 없었을는지도 모르고 ‘敗’까지 가지 말란 법도 없었으리라고 본다.

김연아 선수는 모스크바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이 은메달이 되었다고 뒷말이 무성했다. 푸틴이 자국 선수에게 유리하도록 심판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賞 중에서 가장 큰 상은 ‘노벨상’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어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임기 후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평화상을 받았다. 재임 중에 평화상을 받은 사람은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도 있다. 노벨상의 심사는 얼마나 공정한가? 돈을 써서 되는 수도 있나? 내가 알 수 있나.

국민학교 때 운동회 날 달리기해서 1. 2. 3등 안에 들어 본부석 앞에 줄지어 가 공책을 상으로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가슴 두근거림은 별로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1등, 김종성.” 하고 이름이 불렸을 때는 심장이 쿵 울렸다. 나는 이때 받은 상을 이력서의 受賞 란에 적은 적이 없다. 어떤 명함을 받아보면, 지금 이러이러한 다수의 단체에 소속되어 있고 또 이러저러한 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가득 적힌 것이 있는데, 그 능력의 탁월함에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은 종신제라고 하는데,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 말고도 생존해 있는 심사위원도 그만 사퇴한 분도 꽤 여럿 있다. 이문열이나 김주영 작가도 지금은 심사위원에서 물러나 있다. ‘황석영’ 작가라고 기억하는데, 그분의 어떤 작품이 동인문학상 후보에 올라 심사를 받게 되었다. 작가가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동인문학상 후보작으로 내 작품이 심사 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자 심사위원들이 답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을 때 ‘受賞’을 거부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다. 그러나 작품을 심사하는 것은 심사위원들의 권리다.” 그 말에 작가가 “어쨌든 나는 심사 받기를 거부한다.”라고 재차 이의를 제기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심사위원들의 대답에, 참, 이런 대답이 있을 수 있구나, 감탄했다. “그렇지. 책상 위에 원고 뭉치로 있는 것을 가져다 심사하겠다고 한 것이 아닐 터이니까.”

어떤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거부하면서 “이제 내게 노벨상을 주는 것은 바닷가에 안전하게 당도한 사람에게 구명 튜브를 던져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던가? 가수 ‘나훈아’는 국가가 주는 훈장을 거부했다고 한다. “나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국가가 주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어떻게 영혼이 자유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와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 나도 국가에서 어떤 훈장을 준다고 하면 “나는 영혼이 자유로운 詩人이다. 국가에서 주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어떻게 영혼이 자유로운 시를 쓸 수 있겠느냐?” 하고 거부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지하 시인은 박경리 선생의 사위다.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선생에게 물었다. “이번에 김지하 시인이 원주 문협에서 주는 상을 받으셨더군요.” 박경리 선생이 대답했다. “그 사람은 이제 상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는 상은 겸손히 받아야지요.”

이 말을 듣고 “이게 바로 평범한 사람과 다른 넓은 포용이며 도량이며 襟度로구나.”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게 “당신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소.” 하는 통지가 오면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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