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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신현미(아동문학가, 수필가)
반월신문 | 승인 2020.10.14 12:45

올해 초, 저작권 양도문제의 불공정함을 들어 권위 있는 국내 대표 문학상(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되었던 김금희 소설가. 그녀가 등단 후 11년 동안 써놓았던 개인적인 글들을 모아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출간했다기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그런데, 서문에서도 밝혔듯 읽어줄 사람을 생각한 다정한 글들이 아니어서 소설처럼 재미있거나 수필처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책 작업을 하며 어려운 시간들을 환기해야 하는 자신에게 더 온정의 마음을 쏟기로 했다.”는 솔직함에 ‘많이 아팠구나’ 측은한 마음이 들어 책을 쉬 내려놓지 못한다. 아픈 기억을 꼭 쥔 채 마흔이 된 작가의 지난날을 함께 걸으며 위로하고, 또 그녀의 고백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동행한다.

김금희 소설가는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생활을 시작했다. KBS 드라마스페셜로 방영되기도 했던 단편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고, 이름 있는 다양한 문학상을 여러 번 수상한 촉망받는 젊은 작가다.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복자에게’가 있다. 이번 첫 산문집에서는 유년기와 가족이야기, 문학적 영감과 여정, 사랑과 연애에 관한 마음, 사회문제와 노동에 대한 관심, 사색의 풍경 등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담한 목소리로 하나씩 오픈하여 들려준다.

“유이책보예용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해야 할 여섯 가지 행동에 대한 원칙이다. 그러니까, 유감을 표시하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고 예방을 약속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비로소 용서를 해야 한다. 그 여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 있다면 용서를 행할 수가 없다”(p41)

신년에 겪은 문학상과 관련한 부당한 일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먹을 수가 없으며 감정이 통제되지 않아 치료를 위해 찾았던 한의원에서, 귀엽고 선한 인상의 여자 한의사로부터 들었다는 이 ‘유이책보예용’의 내용만으로도, 아직 용서되지 않아 불편한 작가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착한 척 강한 척 가면을 쓰지 않고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 동조를 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을 둘러보면 ‘유이책보예용’을 행해야 할 사람은 별로 없고 받아야 할 사람들뿐이다. 진실이야 어찌되었든 서로 남 탓만 하다 법정에서 피차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시비가 가려지는 일을 종종 본다. 이렇게 자칭 피해자뿐인 강퍅한 현실에서 위의 여섯 가지 행동 중 몇 가지라도 행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세상이 형편없이 나빠지는데 좋은 사람들, 자꾸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아지는 것은 기쁘면서도 슬퍼지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랑했다가 괜히 마음으로 거리를 두었다가 여전한 호의를 숨기지 못해 돌아가는 것은 나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랑하죠, 오늘도,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채 끝나지도 않았지, 라고.”(p117~118)

상처들로 아파 미워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작가는 다시 훈훈하게 데워질 사랑을 꿈꾸며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겉모습은 자기생각 확실하고 대차 보이지만, 속마음은 여리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음이 전해진다. 근본이 악하지 않다면, 우리 역시도 애정으로 대했던 상대에게서 상처받아 몇 배 더 미워하는 가슴앓이를 하다가도 시간이라는 용서 속에 잊고 다시 애정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우리에게는 아직 마음의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해지고 누군가의 얼굴은 흐릿하게 지워짐으로써 더 정확히 지시할 수 있다. 영화 <윤희에게>에서 달의 형태가 여러 번 바뀐 뒤에야 보름달이 되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영화에서 그 만월까지의 시간은 아픈 윤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 된다.”(p188)

서로 사랑했지만 주변의 반대와 방해 속에 20여 년간 떨어져 영혼의 감옥 속에 갇혀 살아야했던 윤희와 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은 만월처럼 빛난다. 작가는 20년을 한결같이 애절하게 그리워하던 그들의 사랑이 결국엔 이루어짐을 보며, 우리도 원하는 바를 간절히, 절실하게, 반복하여 떠올리다보면 이룰 수도 있겠다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동원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다보면 마음이 차츰 따뜻해져 옴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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