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미(아동문학가, 수필가)

루블린과 코브린 같은 도시에는 교양과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시의 밤’ 행사를 열고 시인협회까지 두고 있는데, 왜 헤움에는 시인이 한 명도 없는가 하는 문제로 의회가 열렸다. 다양한 꽃과 낙엽, 헤아릴 수 없는 별, 독특한 모양의 구름들, 아름다운 눈동자의 여성들, 이따금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 헤움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기에 시인이 없는가 하는 토론은 여러 날 동안 이어졌다.

해결책으로 시인을 초청해 ‘시의 밤’을 열기로 했다. 사람들은 이토록 헤움을 떠들썩하게 만든 시인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흥분했다. 그러나 행사 날 시인들이 입은 평균보다 세 배나 큰 검은 외투와 검은 모자에 놀라고, 낭송 내내 서로 상대방보다 더 깊고 큰 목소리를 내려고 부르짖는 모습에 실망했다. 관중을 생각지 않고 자신만 돋보이려는 모습이 옳지 않다고 판단한 대표는 서둘러 시낭송회를 마쳤다.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해 다시 모인 현자들은 ‘시 경연대회’를 열어 헤움 최초의 시인을 뽑기로 했다. 주민 대부분이 접수했다. 밤늦도록 심사하고 다음날 재심사하고 의회까지 열었으나 최고의 시를 선정하는 일은 어려웠다. 7일간의 검토 끝에 “우리는 시의 밤도 없고 시를 쓰지도 않았지만 시처럼 살아왔기에 모두가 시인”이라고 발표했다. 자신들이 시인이며 헤움이 시인의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느낀 주민들은 전보다 더 시적인 삶으로 돌아갔다.

<인생우화>(류시화 저) 여러 이야기 중 ‘시인의 마을’을 읽으면 요즘 표현으로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린다. 전해오는 우화를 재탄생시키며 넣어놓았을 저자의 의도가, 우리가 평소 잘난척쟁이 작가들에게서 받아오던 느낌이나 생각과 비슷한데다가, 핵심을 위트와 부드러움으로 잘 집어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주민 모두가 시인이고 헤움이 시인의 마을이라는 반전 또한 신선하고 훈훈하다.

지금처럼 코스모스 하늘하늘 손짓하는 가을이나 꽃 잔치 한창인 봄이면 곳곳에서 글쓰기대회가 열린다. 안산문인협회만 해도 매년 봄엔 상록수 백일장, 가을엔 별망성 백일장과 성호문학상 공모전을 연다. 해가 거듭될수록 전국의 초, 중, 고, 대학생과 일반인의 참가율이 늘어나고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온라인 접수로 대체했다. 다행히 종전보다 더 많은 작품이 접수되어 행복한 엄살들을 부린다.

심사를 하다보면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들의 글에서 웃음과 창의력을 얻고, 젊은이들의 정직함과 바른 가치관에서 불의와 타협했던 부분들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인생을 좀 사신 분들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사연에 공감하여 눈물짓기도 한다. 그 순간만은 누가 작가이고 누가 독자인지 헷갈린다. 모두에게 상을 주고 싶은 헤움 심사위원들의 마음과 같다. 아마도 점점 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책 판매부수가 줄고 도서관 이용객이 감소했다는 통계를 근거로 들면서.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과거에 비해 출판사, 서점, 도서관의 수가 현격히 늘어난 데다 전자책까지 한 몫을 하니 오히려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집집마다 미니서점처럼 책들이 그득한 환경인데 어찌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이라면, 따로 시를 배우지 않았어도 늘 시처럼 살아왔기에 모두가 시인이 된 헤움 마을 사람들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꽃과 낙엽을 보고 감동하고, 별과 구름으로 이야기를 만들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삶을 날마다 살아간다면 어떻게 글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작가들이 창작을 위해 자꾸 여행을 다니며 자연과 동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보들만 모여 산다는 헤움의 사람들은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회의를 거쳐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때때로 엉뚱하고 미련해보이지만 상상을 초월한 해결책으로 모두가 평안하게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헤움을 찾은 잘난척쟁이 시인들처럼 겉치레만 중요하게 생각하며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허우적허우적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어쩌면 진짜 바보들은 아닐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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