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영(소설가)의 스마트 소설

산산은 이비인후과에 가서 달팽이관에 대해서 물었고 신경정신과에 가서 공황증에 관해 물었다. 모두 그녀에게 닥친 것이기도 했지만 그녀와 연결된 기계의 수치들은 정상이었다. 단지 그녀만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친 시기가 지나자 그녀는 약간의 하혈을 했다. 그리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그녀의 뱃속에 있던 태동이 사라진 것. 그때부터였나. 산산의 이명. 전봇대가 쓰러지고 전선에 불이 붙으면서 여기저기 자동차 경적음. 사람들의 웅성거림. 휘파람 같던 바람소리, 전봇대가 쓰러지며 뭔가를 긁어대는 소리…. 그것은 뱃속에서의 마지막 태동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잡고 의지할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아이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산산,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산산이란 태풍의 이름은 홍콩소녀였다. 모두들 산산의 작은 몸을 홍콩소녀 같다고들 했다. 산산이 임신 6개월로 접어들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존재를 눈치재지 못했다. 소녀는 아이를 가지지 않은 자의 칭호다. 산산은 스스로 산산이 되었다.

전봇대는 뉴스가 보도된 후 다시 세워졌다. 주변에 있었다고 믿었던 상가들은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산이 기억하는 이미지는 뱃속의 태동처럼 흔적도 없다.

비닐하우스조차 보이지 않는 논만 남은 샛길로 접어드는 남자의 걸음이 슬로우 모션처럼 늘어지게 보인다. 샛길 초입에 색이 바란 사육장 나무푯말이 보였다. 산산은 제 눈을 비빈다. 시간이 거미줄처럼 늘어지고 있다. 정거장이 아닌데도 남자의 욕 때문인지 의례 그랬었는지 이미 남자는 신문지뭉치를 들고 어둠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남자의 뒷모습이 서서히 사라지듯 버스 문도 천천히 닫히고 있다.

—정육점 방 씨 맞지?

—그러게. 오늘 또 잡았나보지.

—집에서 온 가족이 매달려 소, 돼지, 닭 키우고 다 키운 것을 잡을 때마다 저런다잖아.

—그럴 수도 있겠어. 고기를 채소처럼 농사짓는다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산산은 웃는 것인지 울고 있는 것인지 버스 창에 비친 일그러진 제 얼굴을 보며 흠칫 놀란다. 어쩌면 저 울부짖음을 삼키고 있는 남자도 산산처럼 피해자일 것만 같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아이를 꺼내야 합니다.

—아이가 없는데 무엇을 꺼낸다는 거죠?

—살아있는 아이나 마찬가지로 그 아이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겁니다.

산산은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훑어본다. 불이 붙었던 늘어진 전선도 없고 자동차의 센서들도 조용하다. 어떠한 예고음이나 경적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없다. 그녀는 논길로 사라진 남자처럼 병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산산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보조의자 같은 계단 하나를 밟고 수술대에 올랐다. 산산이 기댄 침대가 비스듬한 각도로 편안하게 해주었다. 간호사가 상체와 하체의 반인 배를 가르듯 작은 커튼을 쳤다. 다리를 한껏 벌려 차가운 금속잠금장치로 발목을 묶을 때 산산은 움찔했다. 뱃속에서 의지할 곳을 찾던 생명도 산산처럼 그렇게 움찔했을 것이다. 산산은 어느새 양손까지 결박당한 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 숫자를 세 보세요, 하나, 둘…

산산은 손톱을 새워 팔 받침대를 긁어댔다. 긁는 소리, 위험을 감지한 아이의 본능…. 산산의 의식도 세운 손톱도, 긁는 소리도 멈췄다.

—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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