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애(수필가·문학평론가)의 생각정원

가끔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를 발견한다. 광고지나 행사 안내장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혹 운이 좋은 날에는 누군가로부터 마음이 담겨 올 때도 있어 출입문을 드나들 때마다 괜스레 한 번씩 우편함을 들여다보고는 한다.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다. 편지를 기다리는 재미도 줄었다. 아마 전화 탓일지도 모르고 누군가 생각나면 주저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이 메일을 보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리라. 서너 달 전에 문인 두 분의 저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자주 만날 수 있는 분들도 아니어서 감사 인사를 어떻게든 전하려고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 늦은 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벌써 몇 장의 편지지가 휴지통으로 들어갔는데도 편지는 잘 마무리되지 않았다. 컴퓨터 활자로 편지를 보내는 무성의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이번만은 직접 써보려 했는데…. 하지만 1시간 넘게 편지지와 씨름하던 나는 결국 컴퓨터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컴퓨터를 켜자 하얀 모니터가 환하게 나를 반긴다.

우선 춘천의 P 선생님께 보내는 글을 먼저 작성했다. 보내주신 책은 잘 읽었으며 운치 있는 소양호반을 바라보면 저절로 작품이 떠오를 것 같으니 춘천에 한번 초대해 달라는 애교 섞인 부탁도 잊지 않고 적었다. 그리고 곧 청주의 P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두 번째 편지를 마무리 지었다.

밀린 숙제를 한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를 부쳤다. 답장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답장이 온 것이다. 편지를 보내기도 참으로 오랜만이었지만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답장을 받은 일이 기억을 더듬어야 할 만큼 오래된 일이라 쉽사리 겉봉투를 뜯지도 못했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책상에 올려놓은 편지에 가 있고 어떤 내용의 답장일까 궁금해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늦은 저녁, 드디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첫 줄의 내용은, 보내준 편지는 잘 받았으며 감사하다는 인사의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의 글을 보는 순간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강 선생의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부족한 나의 글에 또 한 분의 팬을 만나게 된 것 같아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가다 보니 아무래도 제게 보낸 것이 아니라 춘천에 계시는 P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같아서….”

‘이럴 수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저장된 편지를 찾았다. P라는 파일명의 문서 2개가 화면에 뜨고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을 보니 춘천의 P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가 분명했다. 두 번째 파일을 열었다. 청주의 ‘P 선생님께’ 라는 인사말 아래 내용은 춘천의 P 선생님께 보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을까. 편지를 읽자마자 청주의 P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아 알려주려고 답장을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 마음 쓰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나의 말도 안 되는 실수 때문에 제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그 후 모 선생님의 출판 기념회에서 청주의 P 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시댁이 청주라는 나의 말에 한번 들르라며 초대해 주셨다. 선생님께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편지를 다시 한번 보냄으로 모처럼 시작했던 나의 편지 쓰기는 끝이 났다.

사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비록 나의 편지쓰기가 이렇게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나 버렸지만,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건 아름다운 인간사의 하나라 하고 싶다. 물론 나와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되겠지만 편지를 쓰면서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었을 시간의 소중함, 그런 사사로운 감정 같은 것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 말로 전하는 것과 글로 전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편지는 깊은 곳에 있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심상을 전달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가슴 설레던 푸르른 한 시절에 쓰고도 보내지 못하는 편지, 영원히 보낼 수 없는 편지, 그런 편지를 밤이 깊도록 쓰고 앉았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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