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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 (2)전이영의 스마트 소설
반월신문 | 승인 2020.09.16 12:22

—씨발….

 

낯선 남자의 욕은 쇳소리로 들렸다. 남자는 그의 손만큼이나 금방이라도 버스바닥에 쓰러질듯 지쳐보였다. 그가 지친 것은 그동안 살아왔던 그의 삶일 것이고 나아질 것도 헤어날 것도 없는 절망을 계속 떠맡고 살아야 할 남자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자 산산은 남자를 꼭 안아주고도 싶다. 힘들지? 라고 묻고도 싶었다. 남자는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서 나오는 말들, 말이 되지 못한 욕들, 처절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산산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었다.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그 순간 뱃속에서부터 욕지거리 같은 구역질이 시작되고 있다. 산산이 자신의 배를 더듬었다. 꿈틀대었던 태동이 있었던 자리, 산산은 남자의 욕설처럼 그 구토증을 토해내고 싶었다.

 

—아, 다 죽여 버릴 거야.

 

남자의 반복된 말이 더듬듯 끊긴다. 울음이 섞여있다. 동물을 닮은 순수한 포효, 원초적인 슬픔의 전달방식일 것이다. 남자에겐 슬픔과 부딪히는 몸부림일 것이다.

 

—시발, 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않는 거야? 목적지는 내가 정해. 시발.

 

운전사는 힐끗 룸미러로 남자를 훔쳐보고 있다. 산산이 기대고 있는 오른쪽 창에 비친 운전사는 견장이 달린 눈부시게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창에 반사되는 밤의 빛과 대조되어 눈부시게 하얗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세탁하고 다림질해줬을. 하얀 장갑을 낀 손, 그 손은 한 집안의 가장의 손이고 아이를 안았을 손이고 여러 사람의 목숨대를 거머쥔 훈장 같은 손일 것이다. 산산은 남자의 쇠된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잘 다림질 되어 창에 비치는 와이셔츠의 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버스를, 버스 안의 운전사와 볼모 같은 사람들을 투시하듯 전봇대가 우뚝 서있다. 마치 목적지가 검정과 노랑이 사선으로 콜라보레이션 띠를 갖춘 전봇대인 것만 같다. 전봇대 쪽으로 다다르자 전봇대를 기점으로 또다시 논길로 빠지는 샛길이 나타났다. 산산의 눈에는 검정과 노랑의 사선이 휙휙 돌아가며 마치 돌풍처럼 휘감기는 것만 같았다. 산산은 눈을 꼭 감았다.

 

몇 주 전, 태풍이 덮친 때였고 산산은 자전거를 타고가다 그녀의 앞과 뒤에 거짓말처럼 전봇대와 가로수가 쓰러졌다. 산산의 자전거는 간발의 차이로 전봇대와 가로수 사이에 교집합처럼 그 사이에 있었다. 산산의 사고는 TV로도 보도됐다. 목숨을 건진, 천운의 여자. 사람들은 그녀를 응급차를 대동해 병원으로 실었다. 산산이 환의를 입은 후 의사보다 마이크를 내미는 사람들로 붐볐다. 산산은 녹음기를 틀어내듯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반복 해야했다.

 

—그러니까, 태풍경고뉴스는 아침에 들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선선한 정도의 날씨였어요. 정말 태풍이 왜 태풍인지 알겠더라고요. 갑자기 자전거가 휘청거렸어요. 때마침 제 뒤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뭔가 긁는 소리 같았어요. 그 소리는 전봇대가 넘어지는……. 제 눈으로 보고 있었어요. 저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 아주 느리게, 길게 느껴졌어요. 순간 그렇게 죽는 줄 알았는데 앞의 가로수를 치고 저는 가로수가 부러지면서 그 사이에…….

 

산산의 기억도 늘어진 테이프처럼 뒤죽박죽 웅웅댔다. 산산은 그 소리의 기억들을 떨쳐내듯 고개를 저었다.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다. 호랑이 굴이라 해도. 하지만 사고는 정신을 놓아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산산의 없었던 증들이 시작된 것처럼.

 

산산은 뉴스로 각종 매체와 인터넷 동영상까지 올랐다. 손끝하나 다치지 않은 행운의 여자, 그러나 사람들은 몰랐다. 산산은 그 사건 후 알 수 없는 허망함에 시달렸다. 뭔가를 놓친 듯한, 뭔가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 후로 균형을 잃고 자주 쓰러졌고 자전거는 다시 탈 수 없었다. 한번 배운 자전거는 다시 탈 수 있다고들 했지만 자전거에만 올라타면 땅이 한쪽으로 꺼지는 것 같았고 실제로 산산은 한쪽으로 쓰러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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