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미(아동문학가, 수필가)

사람도 세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너무나 급격하게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이 당황스럽고, 준비되지 않은 해결책들로 혼란스럽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은 옛말이 되어 이제 흩어져야만 살 수 있다. 검정마스크 쓴 사람을 경계하던 우리가 마스크 안 쓴 사람을 벌레 보듯 한다. 지인들의 안부문자보다 행정관청의 안전안내문자가 더 자주 온다. 한 해가 다 가고 있는데도 학생과 선생은 서로 낯설다. 도서관이 어딘지 가물거린다. 이 상태가 오래가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렇게 될 징조는 여러 번 있었고, 지구지킴이들의 경고와 충고도 꾸준히 있어왔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많이 다뤄진 일들이다. 단지 기득권을 가진 각계의 비리 지도 층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안위를 위해 충고는 무시하고 경고는 알리지 않아, 많은 이들을 무지한 상태로 안전 불감증까지 가지고 살게 한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반복되며 변화해가는 역사는 충고한다. 경전, 잠언집들이 앞 다투어 말하고 있다. 신이 사람들에게 준 지혜의 보물창고인 우리를 좀 보라고. 실마리와 방법은 우리 안에 있을 거라고.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시간을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던 책들에게 쏟기로 했다. 어찌 보면 덕분이다. 집 앞 도서관에는 갈 수가 없고 서점은 멀어 잘 가지지 않지만, 선물 받은 책, 제목만 보고 사놓은 책, 문인들이 보내온 저서 등 쌓여있는 책들로 한동안 풍족하겠다. 읽었던 책도 있고 처음 보는 책도 있다. 저자 이름만 보고 기대감으로 읽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책에서 감동과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대하기 어렵고 지루하고 무겁고 고지식하고 딱딱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는 별로 없다. 쉽고 재미있고 가벼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부드러운 사람이 인기다. 책도 마 찬가지다. 그런 책으로 우화만한 것이 또 있을까. 우화는 참과 거짓의 도덕적인 명제나 기본적인 인간행동의 원칙을 예시하기 위해 쓰인 짧은 이야기로, 흔히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하여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교훈, 도덕, 처세를 보여준다.

이솝우화, 탈무드 같은 책은 오랜 기간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겨 잘난 체하던 인간들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풍자로 깨닫게 해주고 삶의 지혜를 나눠주어 왔다. 여기 또 읽는 내내 감탄과 즐거움, 행복을 안겨줄 우화집 한 권이 있어 소개한다. 폴란드의 작은 마을 헤움이 배경이 되어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시인 류시화가 재창작 해낸 <인생우화>.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가 17세기 프랑스 시인 라퐁텐에 의해 새롭게 써졌다면, 폴란드의 설화는 대한민국 시인 류시화에 의해 새로워졌다. BTS가 빌보드차트 1위를 한 것처럼 멋진 일이다.

<인생우화>는 세상의 어리석은 영혼들을 모두 자루에 담아 신에게 가져 가던 천사가 실수하여 자루가 찢어지면서 일제히 폴란드의 한 마을(헤움)로 떨어져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지혜로운 바보들의 이야기 45편이 실려 있다.

‘바보들의 인생수업’에는 헛간에 불이 났는데 새 짚을 덮어 불을 끄겠다는 황당한 주장과 고집으로 상황을 점점 악화시키는 우둔한 정치인의 모습이 나온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가뭄 때 물 부족 문제를 나무에서 비로, 장마 때 물 범람 문제를 비에서 나무로 단어를 바꿔 부르며 해결한다. 놀랍게도 언어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이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인다. ‘완벽한 결혼식에 빠진 것’은 부자가 완벽하게 준비해서 간 결혼식장에 정작 신랑을 데려가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알맹이를 놓치고 겉치레만 중히 여기는 허례허식을 풍자했다. 나머지 42편도 어찌나 재미있는지 꽤 두꺼운 책이 어느새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부록(279~339p) ‘어처구니없는 세상에서 헤움 식으로 살아 가기’에서 작가는 본문 45편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소소한 짧은 이야기 57편을 덤으로 모아놓았고, 작가의 말 (340~252p)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 우화>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평가를 논리적이고 깔끔한 문장으로 정리해 놓았다.

때로는 어리석은 듯 지혜롭게, 어리석은 듯 행복하게, 어리석은 듯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 우리에게 산적해있는 크고 작은 일들도 부드럽고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를 바래본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