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소설가·수필가·시인

2020년 전, 그때 시절에 사진이 있을 턱이 없다. 왕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었으니 초상화가 있기도 어렵다. 아니, 궁정화가는 있어 로마 황제의 초상화는 있나? 백과사전에서 ‘네로’ 황제의 초상화를 보았는데, 비만하고 탐욕스럽게 보인다. 그때 시절의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 아니면 후대의 어느 화가가 ‘네로’를 상상하여 이렇게 생기지 않았겠느냐 하고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때 시절에 그려진 ‘예수’의 초상화가 지금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 성배나 성궤가 발견된다면, 그렇게 어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수의 초상화가 발견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림을 보고서든 영화를 보고서든 어쨌든 지금 사람들이 떠올리는 예수의 얼굴이 있다. 그는 푸른 눈동자에다 긴 금발, 미남이나 꽃미남이라고 말하기 송구스러운 그야말로 성인의 느낌을 주는 얼굴이다. 결혼을 했다는 말도 있고 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저 추측일 뿐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더라도, 內緣 관계는?

카빌라 왕국의 싯다르타 왕자의 초상화는 있을까? 얼굴과 가슴에 살은 한 겹 가죽으로 붙어 있는 정도인 수행하는 석가모니라고 하는 그림은 본 적이 있지만, 그 그림이 과연 그때 당시의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린 초상일 까? 오늘날 그가 쓴 글씨라거나, 혹은 어느 화가가 그린 틀림없는 그의 얼굴이라는 그림이 발견된다면, 그 값은 어느 정도일까? 수많은 동상이 있다. 이 순신 장군의 동상도 있고 워싱턴 대통령의 동상도 있고 링컨 대통령의 동상도 있고 칭기즈칸의 동상도 있고 김일성의 동상도 있다. 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실존 인물이 아니어서 그런 가? 미국 뉴욕 항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은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하지 ‘자유의 여신의 동상’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언덕에 서 있는 거대한 예수 상도 ‘예수 상’이라고 하지 예수의 동상이라 하지 않고, 석가모니나 그 밖의 어떤 불상도 동상이라 하지 않고 ‘불상’이라고 한다. 약사여래도 있고 아미타여래도 있고 석가모니여래도 있다. 이중 역사상의 실존 인물은 석가모니여래 하나뿐이다. 그의 얼굴은 미남이었는지 꽃미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에 나타난 그의 얼굴은 미남도 꽃미남도 아닌 그저 중후하여 우러러 받들어야 할 얼굴이다. 눈은 감지는 않았으나 어느 곳을 향한 시선이 아니고 얼굴은 희로애락의 어떤 표정도 없다. 한데 어떤 불상의 머리는 모두 ‘螺髮’이다. 螺는 소라라이고 髮은 터럭발이다. 소라 속처럼 배배 꼬여 있는 머리칼이라는 것 이다.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는 지금의 중들처럼 삭발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예수와 석가가 지금 25살 정도의 청년의 모습으로 파리나 뉴욕의 결혼 시장에 나타난다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물론 그들이 구세주이며 해탈한 부처라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신분은 학생이어도 좋고 ‘취준생’이어도 좋다.

차가운 열정의 그레이스 켈리, 은둔자의 신비 그레타가르보, 청순의 오드리 헵번, 그 모든 것을 합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라고 한다. 그 미모의 신비로움이 여러 요소의 정수를 합쳐놓은 것과 같다는 것일 터이니, 내가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그의 사진을 보노라면, 이런 여자는 임금이 되어야 세상이 평화롭지 만약 누구라도 차지할 수 있는 여자가 된다면 필시 전쟁이 일어나고야 말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트로이에 나온 ‘헬레네’는 내가 보고 안심했다. 저런 정도의 여자라면 내가 질투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테일러가 저 신화시대나 왕조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백성의 재앙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테일러는 평생 한 남자하고만 살 수는 없는 여자다. 세파에 떠밀리지는 않는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에 떠밀려서라도 일부종사, 조강치처의 삶은 불가능하다. 그는 팔자가 드셌던 것도 아니고 정조 관념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를테면 가장 크고 오묘하고 향기롭고 현란한 금강석이라, 먼지가 되어 없어질 때 까지 한 곳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숭고 한 ‘큰바위의 얼굴’처럼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과연 그는 일곱 남자와 여덟 번 결혼했다. 일곱 남자와 여덟 번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젊어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왕비가 되어 한 곳에 가둬진 그레이스 켈리를 봐.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동상이 목이 잘리는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노예 해방을 이룬 링컨’ 대통령의 동상에도 페인트가 뿌려졌다고 한다. 드골도 처칠의 동상도 위해를 가하려는 인종 차별 반대주의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경비가 배치되고 차폐물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지. 인종차별을 반대하여 상상 이상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이렇게 성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탄 받아야 할 인종 차별주의자다. 여덟 번 결혼하는 중에 어찌 흑인과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단 말인가?”

파란 눈동자에 긴 금발의 예수와 나발 머리에 인도 고유의 멜라닌과 체형을 가진 석가모니가 파리나 뉴욕의 결혼 시장에 나타났을 때, 석가모니를 향한 피부색 하얀 여인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그러니까 1등칸 차표를 샀는데도 3등칸으로 쫓겨나는. 이랬을 때, 인종 차별 반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인들로부터 받던 차별의 행태가 고스란히 다시 나타난 것이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을 때 나는 다섯 손가락으로는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선’을 보았던 것인데, 그렇도록 그때 말로 ‘중신 말’이 들어왔다. 나는 무슨 이유로 해서든지 그만큼 기회의 축복 을 받았다 할 것이다. 나는 선택 받을 수도 있고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만 선택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일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내가 선택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다. 비단廛에 들어와 몇 가지 물어본 다음 사지 않고 그냥 나가는 사람에게 이유를 물을 수도 없고, 나가는 사람은 그냥 나가는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 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조가 왕비를 간택할 때 최종심에 오른 후보자들에게 물었다고 하지, 꽃은 무슨 꽃이 제일 예쁘냐? 연꽃이라는 후보자도 있고 모란꽃이라 하는 후보자도 있고 장미꽃이라 하는 후보도 있었을 것이다. 그 종에서 목화꽃이 제일 아름답다고 한 후보자가 있었으니, 그 이유를 말하라 한즉, 오 대답이 어이 그리 어질던고. 그 후보자가 낙점을 받아 왕비가 되었으나, 나중에는 손자 왕을 암살하려 자객을 보냈다는 말도 있고 독살했다는 말도 있으니, 진위야 어쨌든 한 일을 보면 열 일을 안다는 말이 있듯, 보여준 심성과 행동이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괜한 말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약 “목화꽃이 가장 아름답소이다.”라는 대답을 들은 왕인데, 그 규수, 생긴 게 꼭 박씨 부인 같더라 했다면, 婦容이 어찌 이리도 해괴하더냐. 내치고 ‘리즈 테일러’를 선택했을 것이다. 선을 본 많은 여자들이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건, 설사 그 규수가 용골대를 붙잡아 주리를 틀 능력을 가졌더라도 부족한 부용 하나가 萬善을 덮었을 것이다.

블랙홀도 없어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 말을 하려면 ‘블랙’이란 단어를 말해야 하는데, 블랙이라는 말은 분노와 슬픔의 상처를 내는 면도날이 된다는 것이니.

더는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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