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영(소설가)의 스마트 소설

— 시팔, 다 죽여 버릴 거야!

쿵, 소리에 산산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았다. 벼룩시장 같은 타블로이드 규격의 신문이었을 것이다. 신문을 집으려는 정지된 손을 보았다. 물집이 굳은살로 박힌 손, 그 거친 손에서 가벼운 떨림이 감지됐다. 그때였나. 산산의 가슴에도 쿵, 소리가 났다. 예감이란 것, 육감이란 것. 산산의 머릿속에 ‘뚜’ 하는 이명과 함께 심박모니터에 가로로 길게 멈춘 선이 떠올랐다.

산산은 차창을 노려보듯 보았다. 딱히 시선을 둘만한 곳은 없다. 허허벌판 같은, 어느 곳을 보나 농가와 비닐 하우스만 보이는 길. 가로등도 드문드문하다. 버스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을 가르듯 잘도 달린다. 마치 휘파람을 불며 드라이브하는 것만 같다.

산산은 집에서 나오자마자 어쩌다 지나가는 택시에 올라탔었다. 어디를 가냐고 묻는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찾지 못하고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 시내를 향하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자 전거를 타지 않은 길은 멀었다. 홀로 그렇게 오래 걸은 기억이 없다. 인적이 없는 길, 산산은 정적의 한 가운데 있는 것만 같았다.

밤이 내려앉은 시각, 아무도 짐작치 못한 그녀의 불운,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자는 의사의 암묵적인 동의시간이었다. 여전히 산산은 행운의 여자로 남기자고…. 그새 밤이 짙어지며 시내와 가까워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치킨간판과 피자집, 묘기를 부리며 버스와 자동차 사이를 누비는 배달 오토바이들도 보인다.

산산은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될 수만 있다면 내릴 핑계들을 떠올렸다. 버스기사는 택시기사처럼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 산산이 스스로 정한 곳에서 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사고 때 예감, 육감 같은 것이 없었던 것도 기억해냈다. 내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운명은 소란스럽게 닥치는 태풍처럼, 혹은 나 홀로 가야만 하는 길과도 같을 것이다.

산산이 곁눈질로 천천히 쿵 소리의 근원지를 돌아본다. 산산의 곁눈질 보다 더 천천히 신문과 신문에서 삐져 나온 물건을 집어 드는 손…. 산산의 머릿속이 서늘해졌다. 어느새 휘파람 소리는 꿈에서만 들었던 듯 버스기사는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밤길의 정면만 응시하고 있다. 산산의 숨이 거칠어지고 있다. 왜 마침 산산의 앞에 앉아 있었던 고등학생의 폰으로 그것을 접했을까.

“부천시 원미구에 피살자 발견. 싸움과 저항의 흔적으로 보아 충동적인 살인이었을 것으로 예상. 살해도구는 주방용 식칼로 봄.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살해당한 ○ 씨, 평소 싸움이 잦았던 동거인의 소행으로 보임. 동거인 △씨가 강력한 용의자로 현재…”

그 고등학생이 내린지는 몇 정거장 전 아파트군락이었다. 그 후에 어쩌자고 시선을 돌려 마주친 신문지, 신문지에 베어 나온 혈흔. 급정거로 인한 ‘쿵’ 소리는 신문지에 쌓인 채 떨어진, 그 것은 끝이 뾰족한 칼끝이었다. 산산은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빈 식칼꽂이에 맞춤한 칼을 머릿속에 그렸다. 산산은 그동안 배웠던 호흡법을 기억해낸다. 눈을 감고 숨을 참다 내쉬고를 반복했 다.

한때 산산은 산산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산소탱크를 곁에 두어야만 안정을 찾았다. 맥박도 정상이었고 기계 수치로는 공황증세의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자연스럽게 그 증상이 사라진 후에도 가끔 소리에 민감하게 심박이 빨라졌고 이유를 알 수 없이 호흡기를 달고 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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