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시인

춘자씨는 평범한 아내였고 딸을 가진 엄마 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을 잘 키우고 좋은 학교도 보내고 남들 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그런 꿈을 꾸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그 꿈은 그리 오래 가지를 않았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남편의 폭력에 무작정 뛰쳐나와 도착한 서울역의 홈리스 춘자씨 금방 돌아 갈 거라고 생각했고 찾아 올 거라고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는 아이를 보면 집에 두고 온 딸 생각에 눈물 훔치는 날이 매일이었습니다.

짧을 것 같은 서울역 생활이 한 해 두해 30년이 흘렀습니다.

그 험한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 왔는지 눈을 감으면 아련한 기억 속 그 세월이 다가 옵니다.

혹한의 겨울날 추위를 이기기 위해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종이박스를 덥고 쪽잠을 청했습니다.

남편과 두고 온 딸아이가 그리울 때마다 소주를 친구삼아 살았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간 세월 그래도 참고 살았었으면 하는 회한도 있었지만 지나간 뒤였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던 파란색 비닐 봉투 그 안에는 춘자씨만의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복수가 차서 의식을 잃어 가면서도 춘자씨는 꿈을 꾸면서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춘자씨가 마지막 남긴 파란 봉지 속 작은 봉투에는 이제 남편과 딸 곁으로 가고 싶다는 한 장의 유서가 있었습니다.

춘자씨 잘가요 이제는 춥지도 않은 따뜻한 양지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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