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허물기의 중간에 (하편)

오필선/시인·수필가 /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드라마에 방영되는 고부 갈등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기도 했다. 아들의 일탈로 며느리의 속을 썩이는 날에는 어머니는 내심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꼼짝도 못하고 쥐여산다며 나무라는 어머니를 달래기 위해, 방문을 닫고 아내를 혼내는 척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어서 확실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노인잔치가 열리고 모범 며느리에게 표창을 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혼한지 벌써 8년이 흘렀다. 아무도 몰래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아내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와 어머니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부모님이 참석한 자리에서 아내는 상을 받았다. 퇴근하고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장모님께 전화했다. 감사하다는 말씀에 곁들여 시부모를 잘 모신 덕에 아내가 이런 대단 한상까지 받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상이란 효과는 대단했다. 어머니도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나면 은근히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아내 또한 예전 같으면 서운하다 했을 일도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다정하게 손을 잡고 목욕탕을 다녀오는 엄마와 딸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평소에도 지병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의 병세가 급 격히 나빠졌다. 어머니는 고혈압, 당 뇨, 골다공증, 뇌병변 등으로 약을 달고 사셨다. 그러다가 저혈당으로 쓰러 지며 골반 함몰과 손목이 분쇄 골절이 되는 중상을 당하셨다. 몸이 쇠약하여 골반 수술은 포기하고 손목만 수술했지만, 전신마취 후 회복이 되질 않았다. 회복이 되는 3개월 동안 대•소변 을 받아내며 아내는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보살폈다. 딸이 많은 것도 감사 한 일이었다. 나와 큰 다툼을 한 후 아예 발길을 끊었던 누이도 어머니의 병 간호에 적극적이었다. 자연히 그동안 소원했던 감정도 풀리고 가족은 하나가 되었다. 18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하며 웃고 울던 시간이 떠났다. 아내는 서글픔과 미안함과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서러 움으로 연신 통곡을 했다. 눈을 감기 전 아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왼쪽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였다. 따뜻한 말 한마디, 살가운 대화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사랑 고 백이 하염없이 눈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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