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우주라는 시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이 우주라는 것은 너무나 거대해서 사람으로서는 그 인지감각(認知感覺)으로는 알 수 없는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양자역학이나 초끈 이론, 입자물리학의 이야기까지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력, 그리고 시간이라는 이야기부터 도통 일반 사람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아마도 주변의 사람에게 중력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론적으로 제대로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대부분 어느 정도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시간이라는 것은 어떠한가? 시간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이것은 중력보다 더더욱 대답하기 난해한 것이다. 과연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라고 원론적으로 묻는다면 답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위의 두 가지를 잘 깨우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사람이다.

지난 글에서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치수(治水)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형태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물질(物質)로 인지할 수 있는 물에 비해, 중력과 시간이라는 것은 뭔가 느낄 수는 있지만, 규정하기 힘든, 볼 수도 없으며, 만질 수도 없는 그러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이 중력과 시간이라는 것의 영향을 단 1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리의 생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이 시간이라는 것은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으며, 이 ‘시간’이라는 단위로 인해 나이를 먹고 늙고 죽어가며, 역사는 또 이 ‘시간’이라는 매체로 흘러간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얽매어 가고 있는 것이 인류의, 아니 이 우주의 숙명인 것이다.
진시황이 늙어 죽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다들 이미 아실 것이다.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늙지 않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 달리 말하면 시간이라는 준엄한 법칙에 자기 혼자 역행에 보려했던 시도였음은 분명한 것이다. 예전에 ‘백투더 퓨처’라는 타임머신 영화가 한참 유행했을 정도로 인류에게 이 시간이라는 것의 끄트머리 실마리를 잡는 일은 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라는 것을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지는 다들 잘 알고 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이 지나면 쓸모가 줄어들고 병들고 늙거나 스러지게 된다. 당장 우리들의 집을 보아도, 쓰임새를 잃고 먼지만 쌓여가는 오래된 물건들이 몇 점쯤은 있을 것이다. 집을 청소하거나 정리하면서 그런 물건들을 보게 되면, 어느 샌가 우리의 기억은 당시의 추억으로 가득 차게 된다. 향수라고 해야 할까?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추(反芻)가 시작된다.

한국도 어느 사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가 40여년을 지나가면서 최근에는 복고나 오래된 물건에 대한 테마들이 많이 나와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려는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 TV 프로그램 중에 오래된 ‘골동품’들을 감정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굳이 조선시대나 고려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살아있는 세대들의 어린 시절로만 돌아가도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물건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내부적 빈곤과 외세의 침략 때문에 영화(榮華)로운 시대가 길지 못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오래된 물건, 소위 레트로나 빈티지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사람들에게 옛 것에 대한 수집 욕 정도는 깔려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어린 시절 흔하게 보았던 요강, 옛날식 세숫대야, 놋쇠 식기들부터 시작해서 옛날 음반, 책, 카메라 등등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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