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청소년세상 경기지부 이재호 대표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을 면접을 통해서 채용했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확신을 갖고 채용했는데 실망했던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결론은 ‘사람은 겪어봐도 모른다’이다.

사람은 모두 다양한 조건과 복잡한 상황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조건과 상황에서 그 무엇인가를 선택한다. 사람의 모든 선택에는 중의(重意)적 의미가 있으며, 그것도 시대적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그 선택의 총합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과 조건이라는 자궁에서 태어난 사람을 ‘알 수 있다’라는 것은 교만한 일이다. 나타나는 결과만 놓고 그 사람을 쉽게 단정하는 것은 일은 무례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과 삶에 대해서 평가는 신중하고 신중해야 하며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선택은 각자가 갖고 있는 상황과 지향에 따라 선택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요즘처럼 돌림병이 창궐 할 때에는 위생과 거리두기가 먼저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복잡하고 중의적일 때 가장 쉽게 하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행동의 포즈를 취해도 결국은 그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지향 그리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돈의 이익을 위해서 사업을 한 것은 동일하나 어떤 사람은 이익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이익을 위하나 공적인 가치와 사회적 공헌을 놓고 이익을 선택한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돈의 이익을 위해서 사업을 선택한 것은 동일하나 두 사람의 사업에 대한 철학과 삶의 지향은 다른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이다. 최근에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는 또다시 속출하고 있다. 한때는 클럽 등 밀집 밀폐공간은 강제 폐쇄 했었다.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거침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다. 왜 그곳은 그렇게 방치했나 하는 것이다. 종교 시설과 비교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방역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문제이고 국가의 무능이 문제 아닌가 하는 것이다. 클럽이 문제이고 방역당국이 문제이지 사회적 소수자가 왜 문제인지 정말 모르겠다.

공간의 거리두기가 사람에 대한 배타적 거리두기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개인의 안전과 이익이 나만의 생존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 말로 멸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은 인간이 갖는 동물적 생존방식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의 범주이다. 인간을 가장 초라하고 가장 굴욕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 일이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이 고귀한 일이 되기 위한 단 하나의 일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일이다. 거리두기는 모두를 위한 일이다. 거리두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존엄에 거리가 생긴다면 우리는 가장 초라하고 굴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사람은 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초라해 질 때도 굴욕적일 때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장 고귀하게 만드는 비결은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 사랑은 존엄이다. 이 존엄이 선택되어질 때 상대도 존엄해 지고 상대가 존엄해 져야 나도 존엄해 진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존엄한 사회가 된다. 이 선택이 바로 나이다.

우리의 평가는 오직 하나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해있는 결과에 대한 평가이다. 사람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 상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가 유일한 평가여야 한다. 이 평가에 기초한 선택은 하나이다.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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