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옥 수필가

친구가 전부였던 시기가 있다. 시간을 좀 많이 되돌려보면, 친구를 좋아하며 가슴 떨리기도 했고, 좀 더 가까웠으면 해서 마음 졸이기도 했다. 뭐든 함께하면 그저 좋았던 때가 내게도 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감독 중국상)는 친구를 향해 열병을 앓던 시기로 자연스레 안내한다.

안생과 칠월은 열세 살에 운명적으로 만나 친해진다. 둘은 함께 웃고, 놀고, 자고, 어떻게든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그 또래의 마음 그대로를 드러낸다. 성향이 달라도 문제 될 게 없다. 엄마의 무관심 속에 성장하는 안생은 자유롭다.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자라나는 칠월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교육환경도 달라 안생은 직업학교에, 칠월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삶의 방향이 달라져도 둘 사이는 좀체 멀어지지 않는다. 만나면 그저 서로에게 빠져들기 바쁘다.

마냥 좋을 것 같은 둘 사이에 변화가 생긴 건. 소명이란 남자가 등장하면서다. 자기만 좋아하는 줄 알았던 칠월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는 소리에 안생이 소명을 찾아 나섰던 게 화근이었을까. 당돌하게 자기를 찾는 안생에게 소명은 끌림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기에게 고백해 온 칠월을 모른 척 못하고 남자친구가 된다. 안생 또한 소명에 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 칠월의 곁을 떠난다. 열여덟에 단짝 친구는 그렇게 이별을 한다.

떨어져 있는 5년 동안 둘은 참 다른 삶을 살아낸다. 아니 오히려 예정된 삶이라고 해야 하나. 안생은 계속 떠도는 생활을 한다. 그 사이 엄마도 잃는다. 더 이상 새로운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안생은 집이 그립다. 칠월의 삶도 맥이 빠진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해 안정된 삶을 살지만 매번 갈증을 느낀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하다. 스물셋, 지쳐 있던 둘은 오랜만에 만나 마음껏 웃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서로에게 거리를 느낀다. 남자에게 기대 사는 안생이 칠월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해방감 가득했던 둘만의 여행은 또다시 끝나버린다. 게다가 우연히 베이징에서 안생과 소명이 함께 있는 걸 목격한 칠월은 화가 나 안생을 몰아붙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향해 비수를 꽂고 만다.

상처는 곪아 터져야 낫는다.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둘은 열여덟 살 때부터 삐끗거리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눈다. 배려하거나 놓치기 싫어 표현하지 못하고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토해낸다. “넌 내 가장 좋은 친구야. 네가 미웠었어. 그래도 내겐 너뿐이었어.” 칠월의 고백으로 미워했다던 안생도 그대로 마음을 풀어버린다. 서로의 그림자를 따라 이젠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둘. 안생은 칠월을 따라 평범하게 살고 있고, 칠월은 안생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허나 뜻하지 않게 칠월은 도를 넘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버리고. 남겨진 안생은 칠월의 흔적을 보듬어 안고 홀로 버티고 있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인간 관계가 없다는 안생의 말은 틀렸다. 그녀 스스로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칠월은 안생에게서 이별을 배우고 그리움과 기다림도 배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영원히 배우고 싶지 않았다.”는 인터넷 소설 속의 독백은 안생의 말이다. 안생은 친구를 내내 기억하고 살 것 같다. 안생은 칠월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터넷 소설을 썼고, 소설 속에서 칠월은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 차마 보내지 못한 친구를 그렇게 품고 살아야 하니까.

감정선이 참 섬세하다. 어쩌면 그토록 심리를 꿰뚫어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가까운 친구를 배려한다고 마음을 감추다 감정을 오히려 다치게 되어 멀어진 경험이 있다. 차라리 우회하지 않고 적절히 표현했으면 더 나았겠지 싶다. 연륜이 생겨 이젠 좋든 나쁘든 솔직하게 전하는 게 최선임을 안다. 가깝다 보면 칠월과 안생처럼 서운한 일이 생길 수 있지만, 친구라면 봉합할 힘도 있음을 믿는다.

칠월과 안생 역을 맡은 마사순과 주동우의 연기도 빛난다. 두 배우가 서로에게 숙명이 된 칠월과 안생을 훌륭하게 연기해 준 덕분에 영화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한국판으로 리메이크 된다던데, 언제 개봉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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