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승 자유기고가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의문을 품고 생각하고 연구했던 주제다.

현대 물리학이 우주의 빅뱅과 그리고 그 끝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대지만, 정작 우리는 사람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 지 전혀 모른다. 많은 종교들이 선악 심판에 따른 천당과 지옥이라든지, 환생을 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들로 사후세계를 규정하고 있지만, 죽은 자는 우리에게 말을 전해줄 수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

때때로 죽음에 이르렀던 사람들, 즉 소위 말하는 임사체험자들의 증언 정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죽음의 선 근처에 갔다가 돌아온 것인지, 정말 그 선을 넘었다가 온 것인지 또한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이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라는 테마는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낸 마지막 수수께끼일 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은 하도 미디어가 발달되다보니 특히나 많이 듣게 되는 소식이 바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 유명인, 지인, 아는 사람의 죽음은 그들의 선과 악, 공(功)과 과(過)를 떠나서, 많은 이야기들을 매조지 짓게 하고, 마무리하게 만든다. 남은 자들은 모든 감정과 갈등이 더 이상 부질없기에 떠난 사람에 대한 것들을 기억의 영역으로 넘겨버리고, 더 이상 현실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된 죽음이었을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반적인 죽음, 즉 나이, 병, 사고 등의 죽음은 우리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매조지 하지만, 죽음의 당사자가 죽음을 의도했거나, 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우는 그 사람을 기억의 페이지로 넘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서울 시장님이 돌아 가셨다. 그러나, 그 죽음에 대해 사회는 시끄럽다. 좌와 우가 대립해서 여전히 더 심하게 말을 하고 있으며, 그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벌써 이 부분부터 무엇인가가 어긋난 것이다. 그 죽음이 순수하게 맞이하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개인의 의지가 들어가 있는 자살이었기에, 그가 무슨 의도로 왜 그런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도 말이 많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죽음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죽음이 되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미약하거나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사람에게는 있다. 인류는 이 ‘자유의지’라는 것으로 이 지구라는 행성을 변형시킬 수 있을 정도의 지혜와 힘을 쌓았다.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그 ‘자유의지’라는 것이 쌓은 역사다. 그리고, 지금도 인류는 여전히 자유의지를 가장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가 행할 수 있는 행위들 중 예외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살이다. 자유의지라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죽음. 죽음이라는 숙연한 것 중에서도 그 자살이라는 것은 인류 대부분의 종교에서 최악의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행위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찰나(刹那)를 지나가는 부서지는 빗방울만도 못한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삭제해 버리는 것은 그 찰나의 역할마저 부정해 버리는 것인 동시에, 생명 경시 사상의 일종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살’이라는 것을 1차원적으로 악으로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 내가 죽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살리거나 돕는 등의 숭고한 죽음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의도된 죽음이 단지 자신의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이라면, 더 이상 변호의 여지는 없지 않을까?

우리는 2009년, 전대미문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보았다. 그리고 2020년, 수도 서울 3선 시장의 자살을 또 한 번 보았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나는 묻고 싶다.

자살자에 대해 슬퍼하고 애도하기 이전에, 그들이 왜 그런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해 묻고 싶다. 권력층, 사회지도층으로의 삶을 영위하던 그들의 자살을 과연 꿈도 희망도 없이 죽어간 서민들의 자살과 동일선상에서 봐 주어야 할까? 오늘도 창밖에 수많은 빗방울들이 부서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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