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글, 김재혁 옮김, 시공사)의 시작은 파격적이다. 열다섯 소년 미하엘이 우연히 도움을 받은 서른여섯 여인 한나와 사랑에 빠진다. 소년은 자신이 여인에게 이끌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고 또 하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결정은 나의 결정이듯이 나의 행동 역시 독자적인 방식으로 나의 행동인 것이다.’

둘의 불꽃같은 사랑은 책을 읽어주는 일로 새로운 의미를 띈다. 목소리가 좋다는 한나의 칭찬에 시작한 일은 어느새 중요한 만남의 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미하엘은 그녀가 책을 읽어달라고 한 진짜 이유를 알기 전에 그녀를 잃는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다.

그녀 없는 도시, 그녀 없이 맞는 오후, 읽어주기에 적합한지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펼치는 일은 고통스럽다. 결국 그 실연은 오만하고 매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쉽게 눈물 흘리는 미하엘을 만든다. 다시 만난 두 사람. 장소는 법정이다. 한나는 범죄자, 미하엘은 법학생으로. 전후 세대인 그와 동료들은 부모 세대 모두에게 수치의 판결을 내렸다. 그들이 1945년 이후에도 그들 주변에 있는 범죄자들을 묵인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한나가 친위대로 들어가 강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했고, 폭격으로 건물에 불이 나서 갇혀 있던 여자들이 모두 불에 타 죽었을 때도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일을 합리화시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본인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라고 진심으로 묻고 끈질긴 반박으로 재판장을 화나게 만들었던 그녀는 보고서에 쓰인 필체와 본인의 필체를 비교해보자는 제안에 무너진다. 그녀는 글자를 몰랐던 거다. 미하엘에게 웃으며 메뉴판을 넘기고, 쪽지를 남겼는데도 화를 냈던 이유는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차 차장에서 승진시켜 준다는 제안에 줄행랑을 쳤던 것도 문맹인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랑을 버린 게 아니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는 다시 도망친다. 가벼운 형량을 포기하고 18년이라는 긴 수감생활을 선택할 만큼 수치심은 힘이 셌다. 법정에서 그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미하엘은 어떤 선택을 할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까. 자신이 나치 범죄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죄책감을 이길 수 있을까.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더욱 꺼내기 힘들다. 그것마저 받아들이는 게 사랑이지만 우리는 그까짓 게 무슨 문제냐고 넘길 수 있는 것들로 아프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용기보다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미하엘은 자신이 한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 그리고 그녀가 한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 질문이 자신의 인생이 된 것도 알았다. 슬픈 이야기냐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부질없다. 그들은 사랑 앞에서 진실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사랑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우면서도 불온한, 철학적으로 우아한 소설에 마음껏 빠질 수 있어서 책 읽는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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