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감정에 휘둘린다. 충격적인 결말을 채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이 훅 들어온다. 부모라는 이유 하나로 <더 디너>(감독 이바노 테 마테오)가 끝나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안 봤다면 모를까 본 다음에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의 답을 찾느라 골똘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 형제 부부는 10년째 한 달에 한 번 디너를 함께 한다. 그것도 똑같은 식당에서 말이다. 형인 변호사 라우리가 비용을 모두 대는 비싼 식사 자리가 동생 부부는 못마땅하다. 잘나가는 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의사 동생 파올라는 그저 형 기분에 장단을 맞춰 주는 척하며 식사 자리에 나간다. 동생 부부는 자주 바뀌는 형의 아내도 탐탁치 않다. 안 보는 데서 바비인형이라고 놀리기까지 한다.

라우리와 파올라는 만나기만 하면 논쟁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언제 죽을지 모르며 살아야 속 편하다고 말하는 파올라에게 라우리가 의문을 제기한다. 죽는 날까지 쓰레기나 변호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기에 알고 싶다고. 의사인 동생은 언제나 솔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둘의 논쟁은 스테파노 이야기를 하다 더 심해진다. 스테파노는 사소한 교통 시비 때문에 현장에서 아빠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총상을 입어 전신마비가 된 소년 환자다. 스테파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파올라는 언젠가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동생은, 스테파니 아빠에게 총격을 가해 죽게 만든 사람을 변호하는 형이 못마땅하다. 쓰레기를 변호하는 거냐고 따지는 파올라에게 누구나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라우리의 말은 허공을 맴돌 뿐이다.

겉으로 보면 형제 사이에는 사소한 견해 차이는 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파올라는 아주 인자하고 따뜻한 의사다. 형인 라우리가 승승장구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더라도 기죽지 않고 자기 신념대로 환자를 잘 돌본다. 그에 비해 누구나 변호해 주는 형은 돈과 승률만 좇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런 둘의 모습은 형의 딸 베니와 동생의 아들 미켈레가 노숙자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전국 방송을 타는 사건을 계기로 뒤바뀐다. 베니의 행동이 자꾸 엇나가는 것이 자신이 다 받아 주어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형은, 사건을 어떤 방법으로든 경찰에 알리고 싶어 한다. 반면, 평소에 신념 있어 보이던 동생 부부는 어떻게 하든 사건을 덮고 싶어 한다.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데도 억지로 붙잡고 가려 한다. 동생 부인은 모든 게 베니 탓이라며 책임을 돌리기에 바쁘다. 아이들이 죄책감마저 없다며 대가를 치루게 하자는 형 말에 동생은 화를 내며 디너 자리를 떠난다. 결국 영화는 시작할 때의 총성만큼 큰소리를 내며 막을 내린다.

<더 디너>는 말문을 닫게 만들고 시작해, 다시 말문을 닫게 하고 끝나는, 한마디로 불편한 영화다. 고상한 척, 정의로운 척, 사이좋은 척… 등등 온갖 척을 하며 살던 사람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위협하거나, 바로 총으로 맞대응하는 엑스트라들의 모습과 주인공 부부의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모른 채, 화를 누르지 못하고 씩씩대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장면이라 난감하다.

더구나 자식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에 이르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열여섯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목격자가 없으니 그냥 덮자는 동생 아내의 태도가 이해는 간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묵인함과 동시에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잘못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형이 애써 용기를 내려는 것도 바로잡을 타이밍을 찾기 위해서다. 무조건적인 보호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영화가 던져주는 생각거리는 바로 내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는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만든 건 아닐 게다. 본성을 있는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인간의 위선을 직시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예리하게 꼬집는 영화를 잘 받아든다. 눈앞이 아닌, 긴 인생을 생각하며 숙제하기로 맘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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