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9년 경기도 청소년 수련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시인으로 등단한지 얼마 안된 시기였는데, 언론인 자격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들 앞에 섰었다.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는 청소년에게 무슨 말을 들려줘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꿈과 희망을 전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모든것은 나에게서 비롯되니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라’고 당부했다.

세상의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되니 작은 것이라도 내게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라고도 얘기했다. 생명의 존엄성도 말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내몸은 내것이 아니고 부모와 사회가 함께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국민배우 최진실의 극단적 선택이 주는 사회적 악영향이 크다는 점도 강조했다.

우리는 사회 지도층을 추상처럼 여길때가 많다. 행복도 불행도 전염되는 법이다. 흔히 옆사람이 하품을 하면 나도 따라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엇그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우리 곁을 떠났다. 박원순 시장의 공과는 차치하더라도 그는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바라보던 정치인이었다.

국민들은 그를 떠나 보내면서 양분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부정과 긍정이 교차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심심치 않게 이어지는 ‘미투(Me Too)’ 의 잔혹사는 왜 계속되는 걸까.

특히 여당 출신 광역 단체장이 발목을 잡히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생을 마감한 배경에도 성추행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앞서 정치무대를 떠난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성추문과 연관이 있다. 절묘하게도 박원순 시장이 세상을 떠난 시점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TV 화면에 비쳐졌다. 모친상으로 귀휴를 나왔기 때문이다.

자치 단체장의 계속되는 성추문 원인으로 절대적인 인사권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극단적 선택이 주는 사회적 파장은 가볍지가 않다. 기성 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전달되는 사회적 악영향은 대단하다고 볼수 있다.

결국은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로 보일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이순간에도 병마와 싸우면서 삶을 연장하려는 사람은 무수히도 많다.

고통스럽더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욕망은 누구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떠한 이유라도 자신을 버리는 일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힘겹게 살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사회 지도층의 행동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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