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현변호사

필자가 수행했던 성폭력 피해자 사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며칠이다. 공직에 몸담았던 피고인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공직에서 파면이 되기에 이른다. 피고인은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는데, 항소심 법원이 실형을 유지하였음에도 이에 불복하고, 파면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까지 나아갔다. 그 기간 동안 피해자가 재판에서 불려가 증언하길 수차례. 재판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2차 피해로 절규 했다. 그런데 구속 수감 되었던 피고인은 복역기간이 끝난 직후에 돌연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소송이 계속 중일 무렵이었다.

피고인의 사망으로 프레임이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다. 필자는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대리했다. 피고인의 사망으로 상고심이 계속 중이던 형사사건은 공소가 기각되었다. 이로써, 피고인의 유죄가 확정된 형사 판결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피고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그 상속인들을 상대로 계속되었는데, 소송을 수계한 상속인들은 위와 같이 형사 판결을 확정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 또한 전면 부인하기에 이른다. 부득이 형사사건 기록 전부를 열람 복사해서 민사 법원에 제출하고, 민사 법원에서 피고인의 책임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아야 했다.

지정된 조정기일에서 조정위원은 피고인의 사망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임의조정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듯한 무언의 압박이 강하게 느껴졌다. 피해자의 범죄 피해 사실보다 가해자의 사망 사실이 더 강하게 사건을 지배했던 순간, 피해자인 당사자도 그 상황에 압도당하여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란 어려웠다. 그래도 소송대리인으로서 필자는 재판부에 조정위원에게, 피고인의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으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덮어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변론해야 했다.

천만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이 있었다. 대단히 충격적이다. 성폭력 사건과의 연관성이 드러난 것은 없으나, 누구나 짐작이 가능한 상황이라 더욱 충격적이다. 평소 정치인 박원순 보다는 변호사 박원순을 존경한다고 말해왔던 필자다. 그래서 그 마음을 알고 있던 지인들로부터 전화로 문자메세지로 위로하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분에게 제기된 성폭력과 관련한 의혹을 마주하면서, 애써 관련 소식을 멀리하게 된다. 어떤 의견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유난히 조심스럽기도 하다.

고인의 발인이 있었다고 알려진 날, 피해자측에선 기자 회견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사건에서 피해자측 변호사로서 필자가 했을 법한 주장들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사건을 달리 평가하는 것 또한 맞지 않은 말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어떠한 업적이 있는지 와는 별개로 성범죄 피해사건이 취급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책임이 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결론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로 인해 변호사 박원순에 대한 평가가 박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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