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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 산다는 것
반월신문 | 승인 2020.07.01 11:32
서정현 변호사

서울에서 살면서 지방 출신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편했다. 이십대 초반,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했을 때 처음 구했던 방이 월 28만원 짜리 하숙방이었다. 기둥이 하나 있는 방을 싸다고 덜컥 구해서, 빈 박스를 주워다가 옷가지를 담아 두고 지냈다. 거실도 있고, 티비도 있는 고향집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통학 거리가 편도 두 시간만 되어도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나의 젊은 날 첫 독립생활은 팍팍했던 기억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한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2인 1실의 기숙사 생활, 화장실과 간이 주방을 겨우 갖춘 원룸에서의 자취 생활, 내 젊은 시절 나의 공간은 내가 꾸는 꿈보다 항상 작고 협소했다. 매달 월세를 내고 사는 생활은 10년 이상 이어졌다. 내 고향이 지방이 아니라 서울 또는 수도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변호사가 되어서는 그럴듯한 오피스텔에 입성해서 주거환경은 좋아졌지만, 단칸방 생활과 비싼 월세 생활은 지속되었다.

단칸방 원룸생활이 끝을 맺은 건 결혼을 하면서 부터다. 원룸 월세살이로 대표되는 생활을 10년여 지속한 뒤 얻은 빌라 전셋집. 감사하게도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아내를 생각해서 서울로 집을 구할까 했지만, 여의치 않은 사정은 경기도에 자리잡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단칸방 생활과 비싼 월세 생활을 벗어난 순간, 아 나도 많이 컸구나. 혼자 상경해서 결혼도 하고 이정도면 잘했구나.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상황이 바뀐건 자녀가 태어나면서 부터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하겠다는 근본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청약? 그 낮은 가능성을 보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방법을 찾아보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 외에는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은행 대출을 제외하더라도 집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여유자금을 모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더 많이 자라기 전에, 2년에 한번 전세 계약을 갱신할 때 마다 전세보증금이 오를까봐 마음 졸이는 일, 전세 계약이 끝날 때 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일을 끊어 내야 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런데 최근 이어진 연이은 대출 규제는 자녀를 낳고, 내집 마련을 위해 앞만 보고 가던 무수한 젊은이들의 날개를 꺾어버렸다. 이미 집값은 많이 뛰어있고, 은행 대출마저 제한되면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내 집에서 사는 것을 꿈꿨던, 지방 출신 흙수저들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 쏟아진다. 내 집 사서 은행 빚 열심히 갚으며 성실하게 살겠다는 목표도, 이제는 이루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기회는 더 이상 균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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