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옥 수필가

핵심은 하나였다. 그 하나가 단숨에 마음을 열게 했다. 사람의 마음이 열리는 데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가진 게 달라도, 성격이 달라도 열쇠는 달라지지 않는다. <언터처블 - 1%의 우정>(감독 올리비에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은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세상에 없을 법한 1%의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그것도 ‘실화’라고 못을 쾅쾅 박고 시작하는.

필립은 파리 시내에 높은 담장으로 둘러쌓인 저택에 살고 있는 백만장자다. 백만장자답게 그에겐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집은 고풍스런 가구와 귀한 그림들로 치장되어 있다. 매일 아침, 집안 곳곳으로는 클래식 음악이 퍼져 나간다. 한 마디로 보통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호사스런 삶을 누리는 필립이다. 그에게 딱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그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몸은 자유로운 반면 경제적인 압박을 심하게 받는 드리스. 감옥에서 6개월 복역한 경력이 있는 그에게는 가족이 많은데, 집은 비좁다. 엄마는 직업 없는 그를 한심하다고 몰아세우고, 동생은 관심 두는 그에게 상관하지 말라며 무시한다. 그는 저돌적이고 거칠고, 눈에 거슬리면 아무에게나 막말을 한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를 못됐다고 평가할 정도로 솔직하다. 거절을 당해야 생활보조비를 받을 수 있다며 필립에게 거절해 달라는 그는 당당하기까지 하다.

겉으로 보면 둘은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은 고급지고 교양 있고, 나머지 사람은 서민적이고, 교양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을 듣는 취향도 완전히 다르다. 공통점이 없고, 결도 다른 그들은 친해질 수 없어 보였는데, 필립의 선택이 방향을 바꿔놓는다. 필립은, 다른 면접인들이 간병인이 되기 위해 갖가지 말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과 달리, 날것으로 달려드는 드리스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관계의 시작이 어떠했든, 둘이 보여 주는 조화는 유쾌하다. 영화 전반에 깔리는 정서이기도 하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필립을 록큰롤을 좋아하는 드리스가 음악에는 골고루 꽝이라고 비웃는다. 생일파티에서 연주되는 각가지 클래식 음악들을 지루해하는 것도 모자라 통화 연결음에서 들었다느니, 톰과 제리에서 나온 음악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림을 보며 안정감을 느낀다는 필립에게 코피 쏟아놓은 그림이니 사지 말라는 드리스다. 그런 드리스를 필립은 있는 그대로 봐 준다. 둘은 간병인과 환자가 아닌, 친구가 되어간다.

고용은 필립이 했지만 ‘있는 그대로 보기’는 드리스가 먼저 보여 준 태도다. 드리스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친구의 말에 필립은 연민이 없어 맘에 든다고 한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잊고 살고 있는 것 같거든. ··· 나를 보통 사람처럼 대한다니까.” 영화 자막에서조차 ‘장애우’라는 표현이 쓰여 유감이지만, 장애인은 불필요한 연민을 바라지 않는다. 드리스의 열린 태도 덕분에 필립도 그의 배경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고 동화된 것이다. 함께 웃고 행복해하면서.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것은 이미 따뜻함을 포함하고 있다. 장애가 있다고 짐짝처럼 실어 나르는 것은 싫다고 하는 드리스나, 붙잡아 두고 싶지만 평생 휠체어를 밀게 할 수 없으니 놓아주는 필립에겐 존재 자체에 대한 따뜻함이 있다. 따뜻함은 상처를 보듬어 안는 힘이 있다. “내 장애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앨리스 없이 사는 거”라며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현실에 갇혀 살던 필립은 드리스 덕분에 다시 여자를 만나게까지 된다. 결국 드리스는 살고 싶어 하지 않는 필립을 살고 싶게까지 만든다.

영화는 유쾌하고 즐겁다. 다양한 음악으로 스토리를 변주하고, 곳곳에 웃음 코드를 심어 놓아 지루한 줄 모르고 보다 보면 물큰한 감동이 여운으로 남는다. 실제 인물들의 근황을 보여줌으로써 둘의 우정이 현재진행형임을 밝히는 행복한 엔딩이 기분 좋다.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실제 인물인 필립이 쓴 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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