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환경미술협회장 서영숙

몬드리안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 네덜란드)은 왜 초록색을 싫어했을까? 아마 단순히 자연을 혐오했다기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1933년 녹음이 우거진 어느 날 칸딘스키의 집에 초대된 몬드리안은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어 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또한, 파리의 작업실에선 선물 받은 튤립의 초록색 잎을 흰색으로 칠하는 파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에 관해 몬드리안은 자연은 너무 변덕스럽고 무질서하기에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고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보려 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아름다운 감정은 대상의 외형에서 방해받는다. 그래서 대상은 추상화되어야 한다.”

사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화단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닮게 그려내는 능력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닮게 묘사해 내는 능력에 있어서 사진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르네상스 이후 작품 속에서 닮게 그리는 것을 추구해오던 화가들은 사진과는 달리 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몬드리안 또한 자신이 작품 속에 무엇을 그려야 하고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시기 몬드리안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던 ‘신성한 지혜’를 추구하는 모임인 `신지학협회’에 가입하여 일반적인 현상들 속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끌어냄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화가의 임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몬드리안은 우리 주변의 사물 속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을 찾아 나가게 되는데, 그의 이러한 과정은 나무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난다.

[붉은 나무] - [회색 나무] - [꽃피는 사과나무]- [나무] 사실적으로 묘사한 <붉은 나무>에서 최소한의 색채와 선만으로 이루어진 <나무>까지 이러한 단순화 과정을 거치던 몬드리안의 삶에 가장 큰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온 뉴욕의 맨해튼이었다.

유럽의 곡선적인 건축과 녹색의 공원에 염증을 느꼈던 몬드리안에게 뉴욕은 신조형주의의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풀 한 포기 없는 기하학적인 질서로 가득 찬 뉴욕에 감동했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꼈다. 그에게 뉴욕은 지적인 절대성의 극치로 각인되었다. 거기에다 음악을 좋아했던 몬드리안에게 뉴욕은 새로운 음악을 선물했다.

재즈!! 고령의 몬드리안은 친구와 함께 할렘에서 흑인들의 생생한 재즈를 즐겨 들었으며 그 음악에 맞춰 추는 스윙 댄스에 굉장한 감흥을 받아 춤추길 즐겨 했다. 극도로 예민해서 수직과 수평에 대해 엄격하던 그에게 변화가 생겨 자유롭고 활기찬 뉴욕의 생활에 영감을 얻은 색 띠의 연속적인 흐름 작은 네모꼴의 연속적인 무늬로 바뀌게 되며 탄생한 <부기우기> 연작의 탄생 빠르고 짧은 리듬이 자유롭게 변주되는 재즈처럼 그의 그림에도 작고 빠르게 반복되는 색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빠르게 스텝을 밟고 있는 댄서들의 경쾌한 움직임 같기도 하다.

작품 못지않게 엄격하고 절제된 삶을 살던 몬드리안에게 찾아온 자유롭고 활기찬 뉴욕에서 새로운 삶 나에게 신선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초여름의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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