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드라마 <전우>가 나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마을 사람들과 빙 둘러앉아 드라마를 보다 보면 탄식과 함성이 뒤섞이곤 했다. 매번 같은 스토리 구조와 결론에도 드라마에 빠져드는 힘은 컸다. 위기에 빠질 때는 조마조마해하고, 위기를 극복하면 다같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러는 사이, 은연중에 북한은 점점 더 먼 나라가 됐다.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마다 6월이 오면 반공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나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언제나 북한은 우리나라를 침입해 피해를 입힌 나쁜 나라였다. 우스갯소리로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라도 난 줄로 아는 아이들이 많았고, 나 또한 도깨비를 쉽게 연상했다. 그래서인지 전쟁을 다룬 책이나 영화에서 ‘사람으로 만나면 다 좋다’며 기존의 의식을 깨 주면 반갑다. <고지전>(감독 장훈)은 우리나라만이 아닌, 북한의 입장도 균형 있게 다루며 전쟁의 피폐함을 전한다. 전장에선 적이지만, 다들 살아남고 싶은 욕구를 가진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영화는 휴전협정 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동부전선의 애록고지를 배경으로 한다. 엎치락뒤치락하던 6·25전쟁에 별 진전이 없자, 남북은 휴전협정 회담을 진행하는데, 이때 서로 유리한 군사분계선을 차지하기 위해 38선을 중심으로 고지전에 목숨을 건다. 방첩대 중위 강은표는 말실수 때문에 동부전선 최전선 애록고지 악어중대로 파견된다. 중위의 수상한 죽음과 인민군과 내통한 사실이 의심되는 편지 사건을 조사하라는 사명을 받고 말이다.

처음에 강은표의 눈에 비친 악어중대는 중심부에서 서류로만 판단하던 모습이 아니다. 군기도 빠져 있고, 어수선하다. 정신이 나간 병사도 있고, 부상 입은 아이도 뛰어다닌다. 어디에도 전쟁의 긴장감은 없지만 교전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진다. 비정하고 처절한 죽음을 만나면서 강은표는 서서히 참상에 눈을 뜬다. 겉으로는 큰소리치지만, 고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남북이 비밀창고를 통해 소통하는 모습에 어느 사이 동화된다. 뺏고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는 애록고지에서도 인간애는 피어난다.

전쟁 초반에는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던 대학동기 김수혁의 변화가 놀랍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강해진 김수혁은 새로 중대장이 부임해 와도 여전히 실질적인 지휘관이다. 위험을 감지하고도 명령대로 하다 한번 당한 그는, 더 이상 복종하지 않는다. 부대원들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를 내놓은 김수혁을 보며, 누군가는 그렇게 몸을 내던졌을 거라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파릇파릇한 신일영 대위는 부대원을 독려한다. 자기네 소대원을 놓고 떠나는 아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배에 올라 살아남는다. 그 기억으로 힘들 때마다 모르핀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부대원을 아끼고 책임지려는 의식은 누구보다 강하다. 살아남는 게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빨갱이와 싸우는 게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것이라는 김수혁의 말을 전적으로 의지해 마음 단련을 하는 그다. 죽음을 면하지 못할 최후의 전장에 나가야 할 때의 결연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의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아프다.

<고지전>은 실화에 허구를 가미해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낸 영화다.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왔다고 해서 완벽하게 사실만을 다루지 않는다. 고지전을 하는 열흘 동안 24차례나 주인이 바뀐 백마전투에 모티브가 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통증을 앓는 포항철수작전은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감안하고 영화 속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감독은, 전쟁의 시작이 아닌, 처절하고 허무한 전쟁의 끝을 그림으로써 반전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시간이 지나니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는 인민군 대장의 말은 전쟁의 무위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열두 시간만 버티라는 외침이 간절하고, 인민군이 부르는 남한 노래가 찡하다. 전쟁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 편 내 편 없이 고지 위에 선 사람들은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또다시 유월이다. 피로 물들었던 고지엔 초록이 무성할 것이다. 초록이 감춘 깊은 슬픔을 꺼내 햇볕에 말려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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