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 글, 강수정 옮김, 김영사)을 쓴 나렌드라 자다브는 ‘인도의 살아 있는 영웅’이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지만 견고한 신분 차별의 벽을 넘어 국제적인 경제학자로 자리잡았고 현재 대학교의 총장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 맨 아랫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인도인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라는 그들의 삶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오지항아리를 목에 걸고 다녔고 발자국을 즉시 지울 수 있도록 엉덩이에 비를 매달고 다녔다.

글쓴이는 이 책의 대부분을 아버지의 삶으로 채운다. 마을 밖에 살면서 마을의 하인이 되어 온갖 궂은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 종일 일을 해도 끼니는 구걸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멀쩡한 사람을 전염병 환자 취급하다니. 게다가 가축도 목을 축이는 물을 마실 수 없다니.

만약 아버지가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타고난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나렌드라 자다브는 없었을 거다. 아버지가 불의에 맞섰을 때 대부분의 친척들이 충성심 강한 집안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고 비난했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의지는 확고했다. “비인간적인 전통은 개나 물어 가라고 해. 나는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야.” 그 어떤 사람도 글을 간신히 깨쳤고, 어엿한 직업을 가진 적이 없는, 엄지손가락까지 잃은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인도의 평등혁명을 이끈 암베르카르 박사를 알게 된다. 수많은 항의운동에도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를 변화시키지 못하자 불교로 개종한 사람. 아버지는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는 그의 뜻대로 여섯 남매를 교육시켰고 불교로 개종했으며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1950년에 인도 헌법은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했다. 관직과 교육기관의 일정한 비율을 불가촉천민에게 특별 할당하고, 각 자치단체와 주 의회,연방의회에 불가촉천민의 의석을 인구 비례로 할당하여 그들의 위상과 복지를 증진하도록 했다. 그 결과가 바로 글쓴이인 셈이다.

그럼에도 상대의 이름만으로 그 사람의 카스트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수천 년에 걸친 박탈과 차별로 그들은 여전히 빈곤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평등하지만 그 밖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글쓴이는 카스트 제도를 권력 독점욕으로 인해 비롯된 것으로 본다. 상층 카스트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권력을 지키고 불공평한 사회질서를 고착시키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렸을 뿐이라는 거다.

아버지는 그걸 알았다. 인간답게 사는 게 뭔지 생각했다. 무지개가 뜨려면 비와 햇살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라고 하면서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후손을 위해서.

나이를 먹는다는 무게와 책임을 갈수록 느낀다. 잘못된 것을 되돌리기엔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아는 까닭이다. 잘못된 만큼의 시간이 걸려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어른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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