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글, 동아시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비정상이라는 낱말로 배척했던 미혼모와 입양 등의 문제를 더는 외면할 수 없었던 듯 가족 안과 바깥을 두루 건드린다.

체벌은 일정한 교육목적으로 가정에서 아동에게 가하는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징계를 말하고 학대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불필요한 고통을 주거나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많은 부모가 본인은 체벌을 했다고 믿는다는데 체벌을 당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도 그럴까.

우리 아버지가 딸 넷을 야단치는 방법은 ‘무조건 다’였다. 한 명이 잘못을 해도, 둘이 놀다가 싸워도 넷이 나란히 앉아 손바닥을 맞았다. 특히 큰딸인 나는 동생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맞아야 했다.

나는 벌개진 손바닥을 문지르면서 동생들을 미워했고 원하지도 않은 동생을 셋이나 낳은 부모님을 원망했다. 사람의 감정은 감추기 어려워서 결국 나는 동생들의 등짝을 때리는 쌀쌀맞은 언니와 단숨에 덥석 안기지 못하는 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은 알지만 체벌에 있어선 그 방법 아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반성이 아닌 ‘겁이 남, 화남’이었고 내가 본 동생들의 감정도 ‘무서움’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매를 들고 무섭고 엄하게 다스려야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고 잘 자란다는 통념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를 죽이거나 해를 입힐 ‘의도’를 갖고 시작하는 학대도 없다. 한두 번의 체벌이 점점 강도를 더해갈 뿐이다.

국제구호개발단체에서 일했고 현재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일하고 있는 글쓴이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는 넬슨 만델라의 말로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이제 아이를 훈육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어른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대할 때가 됐다. 보통 가정 내 체벌 금지는 모든 학교와 시설 등에서 이뤄진 뒤 가장 마지막에 달성된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체벌을 인정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도 그렇다. 이제 가정만 남았다.

그동안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정상가족의 형태로 간주해 왔다. 그러면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정상가족의 여성이나 아이들도 바깥으로 밀려나면 차별받는다는 생각에 많은 것을 참고 억압받으며 살아야 했다.

글쓴이가 바라는 세상은 일상 속에서 위계적 질서를 걷어내고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타인과 공감하는 태도의 변화가 이루어진 삶이다. 가정 같은 작은 곳에서 인권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보다 큰 세계로 나아가려는 꿈은 헛된 일이 될 거라는 말이다. 그 말이 맞다.

아버지는 체벌을 통해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려고 했고 나는 체벌 없이 키우려고 노력했다. 잘 크고 못 크고의 판단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맞은 기억이 거의 없는 딸들도 치고받고 싸우더라. 그럼에도 한 걸음 내딛었다는 생각이 든다. 딸이 부모가 될 즈음 세상은 더 달라졌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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