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하는 건물 뒷산에 피어난 벚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특히 새벽에 일어나서 바라보면 그 모습은 더욱 신비롭다. 은은한 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무리의 실루엣은 모호하지만 분명하게 실재하는 하나님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짧지 않은 코로나의 유배 중에서도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유지하게 해준 친구였다. 그런데 듬성듬성 빠지는 머리털 모양으로 조금씩 꽃잎들이 떨어지더니 밤새 내린 비로 하얀 모습은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화려하게 자리 잡았던 그 자리에 녹색의 잎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제 열매를 준비할 시간으로 들어선 것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벚꽃이 떨어지면 벚나무의 역할이 사라진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 벚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위해 다시 일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열매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화려함에 눈멀었다는 증거이다.

오늘은 419 혁명 60년이 되는 날이다. 독재정권에 학생과 시민들이 저항하여 대통령을 하야케 하고 부정부패의 정권을 괴멸시킨 날이다. 그러나 화려한 419혁명 이후의 열매는 박정희 정권의 18년 독재였다. 얼마 전 21대 총선이 끝났다.

모두가 놀랄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 180석을 정부 여당이 얻었다. 헌법 개정 말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의석수라고 한다. 정부 여당의 경제정책과 국정 운영 등 맘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았으나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위기대응과 안전에 집중하는 태도에 유권자들이 많은 점수를 주었던 것 같다. 선거 다음 날 416 6주기 행사가 있었다. 우울한 날이지만 그래도 전날의 자극이 있어서인지 약간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행사는 조용하지만 힘 있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많은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보면서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우선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상 메시지로 대신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내용인데, 메시지의 내용은 주로 생명안전공원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3년 전 대선을 앞둔 416 3주기 때와는 정반대였다. 그때는 지금의 대통령을 포함하여 참석자 모두가 완전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이제 진상조사와 책임자처벌은 유가족들만의 이야기가 되었다.

선거가 끝나자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물론 맞는 이야기이다. 이 부분의 개혁이 급하고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304명의 죽음에 대한 명쾌한 진상 규명과 시원한 책임자 처벌이 없다면 다른 개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료해지지 않는다.

6년 전 304명이 죽었을 때 박근혜 정권은 노골적으로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때 야당이었던 지금의 여당은 그 당시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의석수가 적어서. 정부 여당이 협조해 주지 않아서. 이제 이 두 가지 조건이 정반대로 되었다. 지금 여당은 6년 전 한나라당이 가졌던 의석수보다도 훨씬 많아졌고, 이제는 정부가 되었다.

다시 한번 정중하고 간절하게 요청한다.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 주시라.

꽃잎들의 화려함은 생명력의 모습이다. 역시 생명은 그 생명을 뽐내야 보기에 좋고 또 다른 생명들에게 힘을 준다. 그러나 그 화려함이 생명의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 신혼의 들뜬 활기로만 살아간다면 어떻게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기쁘다고 호텔에서 파티로만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빛나는 성과에만 매달리고 인기에 영합한다면 정말 실망이다. 정부 여당은 정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실질적인 열매를 준비하고 나아가길 바란다.

늘 호갱이 되어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속아왔지만 이번에 다시한번 믿어본다. 180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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