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저임금과 관련된 ‘성장이라는 놈’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 성장에 생산주도 성장이 있다면 소득주도 성장도 있을 법하다. 생산이 옳으냐 소득이 옳으냐 하는 이 해묵은 질문은 우리에게 늘 미완의 숙제로 안겨지기 일쑤였고 한국적 상황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나는 어느 쪽도 극단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성장’을 둘러싼 생산과 소득의 구조에 대해 독자 제현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바 이것으로 노변 상식의 반경을 넓힐 수 있다면 과분한 소득이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그간의 대한민국은 폐허의 전쟁 이후 경제개발로 기반을 다졌고 개발도상국 지위를 얻어 소품종대량생산에 기반한 제조업과 수출을 통한 고도성장기를 누려왔다. 그러면서 양적 공급을 확대했다. 이래서 개인소득이 신장했고 국부가 창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OECD국가 대열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런 시각에서 보면 생산이 주도한 성장 쪽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어두운 면도 있다. 양적 팽창 시대를 거쳐 오는 사이 재벌들의 내부에 축적된 유보금이 물경 700조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돈 어떻게 모았을까. 제조원가에 재료비, 노무비, 경비가 있다. 이 원가를 쥐어짜서 이익이 많이 남는 제품을 만들고 일반관리비에 속하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감가비 등 비용을 절감해서 영업이익을 만들고 거기서 특별손익을 취해서 당기순이익을 낸다. 이것이 손익계산 방식인데 여기서 배당금을 빼면 유보금이 되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제조원가에서 1차벤더 2차벤더가 납품가 인하를 강요당했고 급여생활자 역시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이 그간의 노동계 주장이고 사회적으로도 일견 합의되는 견해로 보인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30대 재벌 금고에 있는 잉여금은 ‘희생’이 기여한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돈은 국가의 한 해 예산보다 많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급신장한 대한민국 이면에 의도적으로 놓여있는 불편한 유산처럼 보인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경제인들이 합리적 방식에 의해 ‘원가와 비용 절감’을 했는데도 유보금이 많이 누적되어 있다면 그 ‘합리적 방식’에 필요 이상의 이기심이 덧칠되어 있지나 않은지 분석해봐야 하는 것, 이 또한 합리적이지 않을까.

쉬운 예를 하나 든다. 도시 근로자 최상위 10%와 최하위 10%의 소득 차이가 10배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근로자 4명 중에서 1명이 중간 소득의 3분지 2도 안되는 임금을 받는다고 OECD보고서는 말하고 있다(2014). 국유지를 제외한 전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인구 1% 정도가 소유하고 있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시 땅 3분지 2는 서울 인구의 1%가 보유하고 있다. 이것도 양극화이다.

기업들의 유보금을 설비투자나 인건비로 지출해서 소득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 낙수효과(Trickle Down)이다. 역대 정권에서 법인세를 인하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펴면서 이것을 기대했지만 인건비나 복지를 통해 양극화를 좁혔다는 소식은 기억에 뚜렷이 없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소득주도형 성장이다.

국민의 4대 소득 중 하나인 근로자의 근로소득을 인상하고 그것이 승수효과를 통해 소비를 일으키면 다시 제조원가에 투입되어 생산량을 늘리고, 매출이익을 증대시켜 또다시 인건비에 기여하는 선순환구조를 갖자는 것이 소득주도형 성장의 표준 문법구조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최저임금은 근로소득을 인상하여 소득주도형 성장도 해나가자 하는 노력과 선이 닿아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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