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변호사 시절 필자를 지도해 주셨던 변호사님은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셨다. 그 이력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으셨다. 그리고 그 변호사님은 낡은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셨는데, 그 낡은 가방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쌓인 경험과 연륜이 느껴지는 가방이랄까. 뭔가 모를 멋짐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도 저렇게 연륜이 느껴지는 낡은 서류 가방을 가져야 겠다는 꿈을 꿨던 것 같다. 변호사가 되고나서, 그때는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가 가방을 선물했다. 남색 서류 가방이다. 출근을 할 때도 재판을 갈 때도 상담을 갈 때도, 짧은 변호사 생활 기간 동안 함께 했던 가방이다. 가끔 아내가 가방을 들어보고는 뭐가 들어있기에 이렇게 무겁냐고 묻곤 하는데, 내 가방 속에는 변호사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다 있다.

이 가방을 5년 정도 거의 매일 들고 다닌 것 같다.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고, 무엇보다 내 변호사 생활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가방이라 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손잡이 부분이 망가져 더 이상 가지고 다니기 힘든 정도가 되어버렸다. 아내는 이참에 새 가방을 마련하자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버리고 새것을 사자니 참으로 망설여진다. 오랜 시간 사용해서 경험과 연륜이 느껴졌던 지도 변호사님의 가방이 자꾸만 떠올랐다.

손잡이만 빼면 아직 튼튼한 가방이다. 아직 내가 변호사 생활의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내 가방을 보면 그때 그 가방처럼 멋짐도 없다. 아직은 멀었다 싶어서 얼마 전 수리를 맡겼다. 새 것을 사는 만큼의 비용이 들더라도, 지금의 가방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변호사님의 그 낡은 서류 가방처럼 연륜과 깊이가 느껴질 수는 없더라도, 왠지 할 수 있는 한 계속 들고 다녀야 겠다 싶었다.

비록 아직은 경험이 일천한 젊은 변호사이지만, 나도 언젠가는 멋진 낡은 서류 가방을 가진 연륜 있는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손잡이가 망가진 가방 덕분에 처음 변호사가 되었을 때 감정을 모처럼 회고해 본다. 처음 지도 변호사님을 따라 법정에 들어서던 순간 내 눈앞에 있던 그 낡은 가방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만감이 교차하여, 손잡이를 수리한 가방을 다시 받아들면, 지금 보다 더 애정을 갖고 내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은 지도 변호사님이 새 가방을 들고 출근을 했다. 평소에 변호사님의 가방을 눈여겨봤던 내가 어떻게 가방을 바꾸셨는지 물었더니, 아들이 선물한 가방이라 새 것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웃으셨다. 시간이 지나서 나도 그런 가방을 갖게 되었을 때, 아들이 새 가방을 선물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뭔가 뭉클하다.

서정현 변호사 nackb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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