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유난히 친한 친구가 있었다. 절친이나 단짝의 이름으로 보면 이상할 게 없는 더없이 좋은 관계. 그런데 그 친구는 겉으로 보기에 남자 같았다. 운동을 한다곤 했지만 짧게 자른 머리와 맨얼굴, 늘 바지 차림의 옷까지. 여러모로 딸과는 반대였고 그 다름이 공연한 걱정을 불러왔다.

어느 날 둘이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동성 간의 사랑을 인정해 달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하고는 상관없는 별개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억지로는 안 되는 일이 사랑과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성 정체성도 거기에 포함시켜야 될 것 같았다.

내 딸이지만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았다. 더구나 내 삶이 아니라 딸의 삶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른데 스스로 선택한 그 길을 세상의 편견을 핑계로 막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타인의 시선이 딸의 행복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나중에 이 일은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딸은 내가 자신의 사랑과 행복, 삶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본다는 걸 기뻐했다. 그리고 성 소수자의 삶을 자연스럽게 품었다. 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까지 아닐 필요는 없는 그런 마음이 우리 안에 자리를 잡았던 거다.

《내 말은, 넌 그냥 여자야》(앨릭스 지노 글, 김수현 옮김, 씨드북)는 성 소수자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 조지는 학교에서 『샬롯의 거미줄』을 연극으로 만들 거라고 발표했을 때 샬롯 역할을 희망했다. 하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돼지 윌버 역을 맡는다. 아무리 감성이 풍부하고 연습을 많이 했고 선이 가는 외모라 해도 한계가 분명했던 것.

사실은 여자인데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고민하는 조지. 엄마는 그의 고민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지만 성 소수자로 살아갈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샬롯 역을 맡은 친구 켈리. 그녀의 도움으로 조지는 샬롯 역을 멋지게 해내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이들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하게 지지해 줄 수는 있어야 한다는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세상이니까 그 힘든 길을 굳이 가지 않기를 바랐던 거다. 그런 엄마에게 조지는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조지 엄마에게 시대가 달라졌으니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조지에게 너의 길을 응원한다고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다. 하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게 여전히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성 정체성을 다룬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썼다. 소수자나 약자를 배척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에 의해서인 것 같다. 켈리나 그의 형이 조지의 다름을 인정해 준 것처럼 저마다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갈 자유가 있는 거니까.

지나고 생각해 보니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뿐 그게 동성애 아니었나 싶은 몇 장면들이 있다. 규정짓지 않거나 편견이 없을 때 이물감 없이 다가왔던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지는 건 내 안에 벽이 쌓였다는 걸로 이해하고 싶다. 서로 다양한 빛깔을 가져서재미있고 풍성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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