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에 내려온 지 벌써 9일째가 되는 날이다.

첩첩산중의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여기는 송이 채취구역입니다 무단으로 입산할 경우 민형사상 처벌을 받습니다.”

소나무 숲 가득한 산중에서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사는 하루하루 마냥 재미가 있다.

친정에 막내 언니가 나를 케어 중인데 하루 종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막둥이 동생 어찌 될까봐 운동시키고, 목욕 시키고, 끼니마다 식사 챙기는 것도 모자라서 호미랑 칼을 들고 엉겅퀴, 민들레, 쑥을 캐서 자연식으로 요리 해 주느라 무척이나 바쁘다.

오늘은 마을 쪽으로 5분정도 걸어내려 가니 마을은 보이지 않고 조그만 밭들에 농부들의 일손이 바쁘다.

생수 공장 옆 대추나무 과수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의 과수원인데 나무가 얼마나 튼실한지 제법 많은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막내야 올가을에 여기 대추 좀 사서 먹자, 대추나무가 튼실해서 대추도 맛있을 것 같고 완전 청청 지역이라서 제대로 약 되겠다”

“언니 올 가을까지 살 수 있을까?”

“뭔 소리여 지금 같으면 30년도 살겠다”

대추나무 밭을 조금 지나니 참깨 심었던 밭인 것 같은데 살펴보니 씀바귀가 지천이다.

언니는 캐고 나는 따사로운 봄 햇살을 즐기고 풀 향기 맡으며 씀바귀를 다듬어 비닐봉지에 넣고, 참으로 한가롭고 여유로운 하루이다.

올라오는 길옆 밭둑을 살피던 언니는 소리친다.

“막내야 여기 달래 많아”

언니는 아주 신이 나서 달래를 캐지만 너무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에게 뽑힌 달래는 하나도 없다.

여기 온지 첫째 날은 마약 진통제 먹고도 50m도 못 걷고 주저앉고 결국 150m 걷는 게 산책의 끝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고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조금씩 늘어나고 4일 째부터는 마약 진통제 없이 제법 잘 걷는다.

드디어 8일째 3시간의 산행을 했다.

물론 쉬엄쉬엄 가긴 했지만 언니는 계속 “기적이야”를 외치며 따라온다.

“막내야 이제 넌 살 수 있겠다, 신비의 아인수가 우리 막내에게 기적을 선물하네”

언니는 계속 호들갑이다.

산중턱 지천에 널린 두릅이 이제 뾰족이 얼굴을 내밀어 4-5일 지나면 나의 밥상에 올라올 듯하다.

길옆에 싸리나무는 멧돼지들에게 모두 파여 해쳐져 있고 인기척을 느낀 고라니 두 마리가 경주라도 하듯 가파른 산길을 달려간다.

소나무 가지위에 꿩은 꼼짝도 않고 우리를 구경하고 이름 모를 새소리는 세상의 어떤 음악 소리보다 아름답게 들려온다.

무리지어 피어있는 보라색 제비꽃들이 오늘은 유난히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화가님 2~3개월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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