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4.8 수 21:15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황영주의 책으로 들여다보는 세상
나를 안아주는 날
반월신문 | 승인 2020.03.26 09:38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글, 흔)의 첫 페이지에 실린 글이다.

글쓴이는 이 책에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인 기분부전장애의 치료기록을 담았다. 그는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우울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한 번 웃을 수 있는 게 삶이라는 믿음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에게 건넨다.

스스로 사적이고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말하지만 그가 정신과 전문의와 나누는 대화는 나의 말이기도 하고 내 딸의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말이 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았을 거다.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작은 평수, 엄마를 때리고 살림을 박살내던 아빠, 조건부 사랑을 준 터울이 큰 언니. 이런 환경에서 자존감이 낮아진 그는 원하던 것들(다이어트, 대학 진학, 연애, 친구)이 해결된 후에도 우울하다.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20대에 나 역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 대학교 공부를 하는 것도 벅찬데 갑자기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됐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생각했던 이상으로 커서, 잘 할 수 없는 걸 알아서 더 힘들었다. 누가 다가오면 내가 힘든 걸 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서 밀어냈다.

한 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호감을 갖고 다가왔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무조건 뒷걸음질을 치는 내게 친척 오빠가 말했다. 너는 학벌은 뒤져도 어느 누구보다 지혜가 있다고. 내가 지혜가 있었던가. 낯선 그 말의 의미를 든 채 오랫동안 허우적댔다.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다가와 ‘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 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정 환경이나 학벌 등을 걷어내고 오롯이 나만 봤다. 나 역시 그런 외부적인 조건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저마다 생각하는 고민들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이 힘들어할 때 안아주고 공감해 줬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늘 예외를 두었던 거다. 글쓴이가 “왜 나를 좋아해?”라고 물었던 것처럼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온전히 나를 들어내 개별적인 인간 황영주로 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가 안타깝고 젊은 날의 내가 안타깝다.

다행히 그는 스스로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고 현재를 즐기는 방법을 얻는다. 누군가 선물을 주면 고마워하면서도 언젠가는 갚아야 된다고 부담 갖는 걸 그만 둔다. 그냥 기뻐하기로 한 거다. 반면에 나는 지금도 ‘밥 사줘.’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언제쯤 오는 마음을 편하게 받고 이 말을 쉽게 꺼내게 될까.

그는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아마 울 거 같다.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삶은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므로 평생 살아가며 연습하면 된다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속삭인다.

2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뭐라고 할까.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상했던 모습 그 이상인 건 분명하니까 아마 놀랄 거 같다. 그래서 이제 나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고 무조건 안아주겠다.

반월신문  webmaster@banwol.net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월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704-1 대우빌딩 305호 반월신문사  |  Tel 기사제보 : 031)415-5533, 6644  |  팩스 031)415-2237
창간일자 : 1990년 11월 1일  |  발행인 : 홍일호  |  e-mail : webmaster@banwo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일호
Copyright © 2008 - 2020 반월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