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새벽은 삼성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라서 언제나 바쁘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출발해야 7시경 채혈하고 9시20분 진료를 볼 수 있다.

지난 수요일도 마찬가지로 병원을 향하는 차 속에서 남편은 내게 묻는다.

“오늘 항암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못 할 것 같아,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몸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힘들 듯 해”

실은 지난주에 많이 아팠다.

마약 진통제 없이는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고 집안을 걷는 것도 많이 힘들었다.

진료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임상 연구원의 얼굴 표정이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안 좋아 보인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교수님 말씀이 한동안 없으시다가 환자는 나가 있으란다.

번뜩 스치는 느낌이 남편에게 시한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한 참후에 나온 남편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무슨 일이 진료실에서 있었는지 훤히 짐작이 갔다.

“몇 개월 산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몇 년 더 산데”

“아니 괜찮아, 난 알고 있어 내 몸을 내가 모를까, 몇 개월이래?”

진료실 밖에 앉아 있는데 급하게 간호사가 달려온다.

“혈관 좀 볼게 요”

“항암 약 바꿔서 한번은 맞을 수 있나 보게요”

“혈관을 전혀 찾을 수가 없어 못하겠어요”

간호사는 급히 가버리고 우리는 상담실에서 항암주사 투여할 케모 포트수술 상담을 하는 중

다시 상담실로 수간호사인지 간호 팀장인지가 달려와서 내 팔을 검진하더니 한번은 항암 할 수 있다며 1시 30분에 심장 초음파 하고 결과 좋으면 저녁 7시 경부터 주사를 맞고 가라고 한다.

항암이고 뭐고 다 안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남편을 졸라도 남편은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며 그대로 따르자고 한다.

시간이 다가와 1시 30분 심장 초음파 하고 2시간 뒤 내게 전화가 온다.

“심장이 좋아서 항암 할 수 있겠어요”

“수납 하시고 2층 외래 항암 센터에서 접수 하시고 기다리세요”

마지막일줄 모르는 항암을 하고 집에 오니 저녁 9시 30분이다.

다행히 슬프지도 않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담담 하다.

2008년 유방암 수술 후에 항암 8회, 방사선 28회를 받고 아주 열심히 살았다.

11년간 공짜로 삶을 살았으면 됐지 무슨 욕심을 더 부릴까.

그러나 홀로 남겨질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서 슬픔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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