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 선생님이 다양한 글이 새겨진 컵을 주욱 놓고 하나씩 가져가라고 하셨다.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은 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 참말이다.’ 《피프티 피플》(정세랑 글, 창비)을 읽지 않았다면 오글거리는 글이 적힌 이 컵을 선뜻 들지 않았을 거다.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글쓴이는 50여 명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을 만들어냈다. 퍼즐을 맞출 때 가장 힘든 건 거의 백색에 가까운 하늘색 조각들이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없다면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 책엔 미색뿐이라고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조각 같은 사람들을 담고 싶었다던 그의 마음이 녹아 있다.

선명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의 삶은 우리네 삶 그 자체다. 바로 엊그제 카페에 앉아 나눴던 재밌거나 혹은 안타까운 그런 이야기들. 송수정은 곧 있을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그런데 그녀의 엄마는 딸의 결혼과 자신의 죽음을 동시에 준비한다. 암에 걸린 엄마 때문에 결혼식의 주인공은 수정과 남자친구여야 하지만 엄마가 된다. 결혼식을 가장한 장례식. 사는 게 그런 거다.

문우남은 첫 아내를 난소암으로 떠나보냈다. 재혼은 생각할 것들이 더 많아지는데 다행히 아내는 어떤 사태든 가볍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귓속에 벌이 들어가 응급실을 찾았다는 그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심지어 명예퇴직을 권유받았을 때도 그런 회사는 몇 년 안에 망한다며 웃었다. 회사는 정말 그렇게 됐고 그는 그런 재주가 있는 아내와 손을 잡고 장을 보고 단풍놀이를 간다.

이처럼 불화와 불운은 밀려 왔다가 사라지는 파도와 같다. 파도는 쓰나미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시차를 두고 찾아온다. 높이도 세기도 제각각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나와 너가 크게 다르지 않다.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을 땐 각자 파도에 맞서느라 정신이 없지만 옆 사람이 그 파도에 떨어져 나갈 땐 손을 내미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글쓴이가 각자의 조각 안에선 주인공인 사람들을 담아내려고 한 까닭을 알겠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정말 열심히 살아내는 그런 삶은 오롯이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그림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귀퉁이의 빈 곳을 채우기도 할 거다. 중요한 건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것.

그럼 왜 50여 명인가. 이 정도 숫자면 사람은 다 다르지만 모두 자기만의 멋과 향기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하기에 적당해서 그런 걸까. 패러글라이딩 사고를 당한 고정우의 죽음에 많이 울고 조금 울고 울지 않은, 몸이 충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가만히 내 주위의 아름다운 이름들을 헤아려 본다. 끊임없는 파도를 무던히 견뎠던 건 그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나의 내일도 오늘처럼 수월하리라.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이름일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으로 봄바람이 든다. 그렇다. 나는 이쁘다. 그리고 너도 이쁘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얼굴들이 있어 삶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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